나는 병신이고 학문은커녕 학문의 기초마저 후달리게 어렵기만 한 터에 어깨에 힘을 어찌 빼나. 뭘 더 얼마나 굽히고 낮추고 버려야 내 꼬라지에 걸맞는 수준으로 발버둥을 칠 수 있는 건가. 전체를 물 흐르듯 거듭해서 읽고 읽고 또 읽으며 가자니, 다시 돌아올 때마다 내가 저지른 지랄들과 헛짓거리들이 눈에 밟혀서 누가 오함마로 대가리라도 깨부숴 줬으면 싶은데, 많지도 적지도 않은 시간만 남아서, 내게 또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긴 길을 에둘러 갈 결심을 세울 용기가 남아있는지도 이젠 잘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적당히 비비고 문대서 타협하고 빌어먹고 사기치고 구라치고 그렇게 넘어가자니, 그러고 살기엔 아직 배가 부른데, 등이 따순데, 게으르고 비겁하게 넘어가자니, 자꾸만 죽은 사람들이 눈에 밟히는데, 주제 넘게도 내가 그런데 어째야 하나. 공부하다 뒈지면 면피라도 될까 싶건만, 미친 놈이 술주정이나 해댈 뿐 책 붙들고 있는 사이에 죽을 기미는 보이지를 않는다. 모든 걸 다 알 수도 없고, 다 이겨먹을 수도 없고, 먼저 배운 사람들이 남들 배우라고 써 남겨 놓은 것에서도 배울거리를 못 찾으면 그딴 공부는 해서 무엇하나. 뭘 어떻게 가르쳐주는지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전보다 더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고 들러 붙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어깨에 힘만 들어간다. 주제도 깜냥도 안 되는 나란 새끼는 철 지난 논문 하나 붙들고 무슨 건곤일척의 담판이라도 짓겠다는 듯이 바들바들 떨면서 그럴싸한 말 몇 마디를 찾느라 시간만 허비한다. 사태에 부합한다는 진술이 그 진술이 지시하는 대상이 있다는 의미와 그 진술이 서술하는 속성이 그 대상에 귀속된다는 의미까지 확장되고 그 사태가 있다는 진술로도 간주된다. 무엇인가가 진술된다면 그것은 무엇인 것으로서 존재한다, 이는 필연적이다. 무엇인가가 진술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무엇인 것으로서 존재한다. □(A→B)에서 (A→□B)로의 오류추리, 오류추리라고 하는데 양화가 들어가서 오류인가 그냥 형식적으로 문제인가, 글쓴이가 어느 쪽을 주장하고 있는 건지는 잘 안 잡히고 그 와중에 그건 지금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란다. 타란이었나 콕슨이었나 오웬이었나 여하간 이 양상 가지고 파르메니데스의 시에서 등장하는 길들이 세 개랬나 네 개랬나 뭐 그랬다는데. 이것 봐, 내 안의 병신이 이만큼이나 자랐어. 씨바.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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