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시에 나타나는 being의 원칙을 함축하는 단순하고 역사적으로 타당하며 철학적으로 파악가능한 가정들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가정들은 암묵적으로 주어질 뿐 그의 시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역사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역시대착오의 오류를 저지를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경우 당대의 선구자로서 그가 선취한 영역을 이해할 가능성이 닫혀 마찬가지로 역시대착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능동적이고 주재적인 가정들로서 이 시에 대한 일반적 입장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시 자체에 대해, 후대의 반응들에 대해, 그리고 오늘날 철학적 선제들과의 유사성을 통한 그의 철학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열릴 것이다.
  (2) 탐구의 과정은 첫째, 초기 그리스에서 being 개념에 대한 기초작업을 제시한다. 둘째, 'it cannot be said that anything is not'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핵심 원리에 대한 해석을 제시한다. 셋째, 'of what is, all that can be said is: it is'라는 원리를 설명하고, 넷째, "진리의 길"에서 남은 우주론을 간략히 다룬다. 다섯째, 파르메니데스 스스로 자신의 논증 결과들을 믿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고찰한다. 그리고 방법론에 대해 첨언한다.

1. A Word on ὄν

  (1) 파르메니데스가 τὸ ἐόν을 제시하는 구조나 독자에게 기대하는 해석은 불분명하나 그가 이에 관련된 매우 중요한 의미에 대한 통찰을 전하려 한다는 것은 충분히 분명하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해석을 위해 그리스어 ἐστιν, ὄν, τὸ ὄν, εἶναι 등에 대한 독해를 확정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2) 주-술 결합에서 'is'와 존재사 'is'의 구분은 당대 그리스 일상어법에서도 철학적 용법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그의 시에서 보어가 등장하지 않는 완전용법이 빈번히 출현한다. 이런 이유로 그가 존재사적 의미에 스스로 국한되었으며 이 지점에서의 혼동이 그의 전체 원칙 전반에 책임을 갖는다는 입장이 제시된다. 그러나 당대 철학적 용법은 존재사에도 술어적 용법에도 국한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며 혼용된다. 
  (3) 이 혼용은 ἐστι의 사용 자체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예들을 포함하는 더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보인다. 이것들은 파르메니데스 해석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a) 대상에 대한 속성 부여를 사실을 진술하는 단언의 이상적이거나 전형적인 형식으로 간주하는 경향과 (b) copula로 연결된 주-술문장을 대상에 대한 속성 부여의 이상적이거나 전형적인 형식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으로 서술적 ἐστι는 사태에 부합하는 것(참인 것, is the case) 혹은 속성을 부여받는 것(현전하는 것, obtains)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구분되지만 당대에 동화된 다양한 용례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1a) 사실이라는 것은 (ὄν) with (1b) 존재와 (ὄν), (2a) 사실들은 (πράγματα, τυγχάνοντα, etc.) with (2b) 대상들과 (πράγματα, τυγχάνοντα, etc.), (3a) 변화는 (the case) (γίγνεσθαι) with (3b) 발생과 (= coming to exist) (γίγνεσθαι). 

 주-술 계사는 속성 부여의 표준이고 속성 부여는 사태 진술의 표준이다. 1에서 사태 진술은 현전과 동화되고, 2에서 사태들은 대상들과 동화되며, 3에서 사태의 변화는 사태의 발생과 동화된다. 사태와 대상의 혼용은 의미론적으로 특수항과 보편항의 동화경향이다. 이 경우 부합한다는 것은 is의 두 의미에 따라 둘로 구분될 수 있다. 따라서 사태를 기술하는 문장의 참값은 특수항이나 보편항에 어떤 것을 적용하는 존재자 지시와 혼용되는 경향을 가질 수 있다. 반면 문장의 거짓은 용어 적용의 실패와 합쳐진다.

 (4a) 언어적으로 표현하여 ~인 것을 말하는 것(참을 말하는 것)과 (4b) 있는 것을 말하는 것(존재하는 어떤 것을 명시하는 것)
 (5a) ~이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거짓을 말하는 것)과 (5b) 있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명시하는 것)

 끝으로 명제적 지식과 방법적 지식의 혼용이 있다. 여기에 더하여 『국가/정체』 5권(476-480)에 등장하는 지식의 대상과 믿음의 대상 사이의 구분, 그리고 이 두 쌍 각각의 내적 관계를 고려하면 방법적으로 알려진 것은 존재하는 것이, 명제적으로 알려진 것은 사실로서 그러함이 필연적이라는 원칙이 도출된다. 이 역시 혼용된다. 

 (6a) 필연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다 with (6b) 필연적으로, 알려진 것은 있다
 (7a) 알려진 것은, 필연적으로 ~이다 with (7b) 알려진 것은, 필연적으로 있다

7a에 대조적으로 믿음에 관련된 원칙들이 도출된다.

 (8a) 비-필연적으로, 믿어진 것은 ~이다.
 (9a) 믿어진 것은, 비-필연적이다.

6에서 7 혹은 8a에서 9a로의 오류를 차치하면(조건과 귀결 사이의 양상관계가 귀결절 자체의 독립적 양상으로 바뀌나? necessitas consequentiae → necessitas consequentis), 방법적 지식과 명제적 지식의 결합 속에서 ὄν의 두 가지 용법이 혼용되어 있음이 분명해진다.

  (4) 방법적 지식을 감각지각으로 간주하면

  (8a) 비-필연적으로, 믿어진 것은 ~이다. with (8b) 비-필연적으로, 감각지각된 것은 있다.
  (9a) 믿어진 것은, 비-필연적이다. with (9b) 감각지각된 것은, 비-필연적으로 있다.

역시 이행과정의 오류를 차치하면, 방법적 지식과 믿음이 모두 doxa 개념으로 포괄된다. 이제 혼용은 τὸ ὄν, τὸ γνωστόν, τὸ δοξαστόν의 삼중이다.

  (5)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평가는 그의 시에서 being의 두 의미 혼용에 더해, 그것이 파르메니데스의 결론들을 도출하는 데에 중요하지 않다는 난점을 가지고 있다. 

-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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