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도교수님께서는 다음 학기까지 논문을 제출하려는 계획이 가당할지 되물으셨다. 음, 글쎄, 모르겠다. 석사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얻고자 했던 건 기초였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다진 기반에 대한 검토를 거친 보장이었다. 제기한 문제가 역사적으로 가치를 검증받은 그러한 고전 문헌 중에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정당화하고, 그 저술이 보여주는 문제의식을 둘러싼 연구사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거쳐 가야할 자료들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추려내어 계획을 잡고,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내 입장을 글로 써서 밝히는 것, 말하자면 이건 연구를 수행할 기초적인 훈련이 되어 있는가에 대한 시험을 받는 과정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연구할 수 있다'라는 승인을 구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그리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박사과정은 거기에 '스스로'가 부사로 붙는 정도 아닐까 싶고. 물론 해당 연구사에 대한 기여도가 중요한 문제가 되겠지만, 그 역시도 스스로 연구해 나아갈 한 사람의 학자로 인정받기 위한 평가의 요소 중 하나로 들어갈 테고, 그 이후에야 뭐 기여를 하는지 못 하는지 그런 건 학계에서 단계마다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 과정을 대충 어떻게 굴러먹어 덮어 넘기고 지나가 봤자 어차피 이후에 연구자로서 살아가는 일이 계속될 수 없을 것은 자명하지 않나. 물론 '학문의 전통'이란 것을 냅다 집어 치워 버리고 나 혼자 잘난 맛에 낄낄거리며 자위질이나 하며 살아가려면야 학위고 학제고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그럴 작정이었다면 애초에 대학 자체를 안 갔겠지. 대학 갈 결심을 하기 전까지 내 장래희망 중 하나는 술, 담배, 마약에 절어 좆질이나 하다 복상사로 뒈지는 거였으니. 흐, 이 꿈도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야무지네. 여하간에, 익숙한 좌절에 다시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본래 계획대로 논문을 제출해 통과를 하더라도 수료 후 세 학기를 보낸 것이 되고, 연구계획 심사랄지 그 비슷한 것을 받는 과정에서 '안 된다'는 얘기가 나와 버린다면 그마저도 더 늦어지게 되었다. 나이가 서른마흔다섯이 된들 뭔 상관인가, 석사논문에 10년을 쏟아 붓는 일도 안될 게 뭐 있겠나, 그렇긴 한데 나는 지금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건지. 석사논문으로 플라톤 해석사와 서구철학사 전체에, 아니면 앗싸리 인류사에 큰 획이라도 하나 그을 요량이었더라면 또 모르겠으나, 나는 그저 '너 공부해도 된다'는 허락이 간절할 뿐이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역시나 그리 말한다. 석사논문에 기 빨리지 말라고, 후딱 털고 박사도 빨리 따고 어서 할 일 찾아 해야 한다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욕심을 버린 뒤에도 여전히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노력을 요구받을 때, 혹은 이런 것들과 상관없이 '지금 꼬락서니로 봐서는 네 재능이 필요에 미치지를 못하니 나가 뒈져라'라는 식으로 이해되는 평가들에 발목이 잡혀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뭐가 있나. 다음 학기에 못 낸다면 그 다음 학기를 목표로 준비하게 될 것이고, 몇 학기에 걸쳐 준비를 하고 통과를 하고 나면 그대로 박사과정 입학시험을 치든 유학을 시도하든 아니면 병행을 하든 뭐 또 그 다음 걸음이야 거의 정해져 있다시피 하지만, 아, 모르겠다. 무서울 건 또 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정해진 길을 아득바득 기어가면 된다. 닥치고 두 발을 옮기고 대가리를 굴리고 읽고, 생각하고, 쓰면 된다. 그냥, 늘 그렇듯이, 또 징징거려 봤다.

2. 천재일 필요는 없지. 다만 이거 하려고 살겠다 다짐한 나로서는 동시에 굳이 내가 이것을 해야만 하는 이유나 당위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 또한 떨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결론은 살만한 가치라든지 뭐 그런 것을 말하기 애매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아깝게 떠나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하는 일도 없이 불면에 시달린다. 간혹 누군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와 삽날로 내 모가지를 내리찍을 것 같은, 내 상황과 조건이 간절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혹은 더 나은 재능과 성실함으로 더 좋은 결실을 앞두고서도 죽어 버린 그런 사람들이 돌아와 내 사지를 찢어 발길 것 같은, 혹은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무섭고 두렵고 불안하고 뭔가 죄책감에 가슴 졸이고 부채의식에 목이 죄인다면, 나는 좀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있어야 한다. 핑계도 변명도 아무 필요 없다. 중요한 건 사실이다.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이루어 놓았나, 아무것도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 허무한듸. 학제 외부에서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을 책상물림 뜬구름 잡는 고리타분한 비겁자들 취급하고, 비생산적이고 기계적이며 그저 답습에 답습만을 거듭한다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쌩개지랄을 떨어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역시나 열등감일지도 모르겠다. 이름없는 필사가, 잊혀진 편집자들,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두어 사람 읽히고 잊힐 글을 쓰고 살았다가 죽어 사라진 숱한 사람들의 뼈무더기 위에 세워진 학문의 역사에는 물론 외부로부터의 자극도 필요했을 것이다. 허나 반대로 그 장기말들, 벽돌 혹은 자갈이나 모래알들, 천재도 영재도 수재도 아닌 어거지로 버텨 몸으로 학문을 버티다 깔려 뒈진 병신들 없는 그러한 학문이란 걸 정말로 상상이나 할 수 있나? 아니, 넘치는 재능과 들끓는 열정으로 제 이름자를 남기는 대신 남길 것을 지키고 전할 것을 간직하는 일에 투신한 사람들, 그런 천재들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있나? 몇몇 쓰레기를 제하고 나면 정말로 그렇게 싸잡아 욕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이어져 왔고 또 이어 나아가고 있는 마당이 저 우골탑인지 상아탑인지 하는 화장터가 아니겠나. 이 바닥에서 잘난 사람들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허드렛일이나마 할 만큼의 자격만 갖춘다면, 그래도 나 따위 개쓰레기도 뭔가 조금은 살 만한 삶을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내 삶의 목표는 이쪽에 있다. 강단에 서지 못해도 좋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못하여도 좋다만, 읽혀야 할 글이 읽혀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어야 할 방식이 반복되고 전승되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그냥 되풀이하여 지키는 데에 아주 조금이라도 미력하나마 일조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그런 내가 꿈꾸는 삶이 거기에 있다. 그걸 깔아 뭉갤 정도의 가치가 저 '바깥 사람들'에게 있는가? 이 과정을 왜곡하고 날조하며 위악스럽게 호도하고 비난을 일삼을 정당성을 정말로 그들이 가지고 있나? 모르겠다. 그러할 수 있을 만큼의 재능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짓을 할 만큼의 확신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들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이다. 철학자의 말 몇 마디로 세상이 좌우되는 일이 가능하리라 믿을 만큼 내가 단단히 콩깍지가 씌진 않았고, 끽해야 aletheia가 아닌 doxa나 pistis 정도 던져주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게 고작일 대중의 영웅들에게 내가 찌질거리며 열폭하는 게 뭐 그리 잘못인지도 사실 모르겠다. 그들이 비난의 표적으로 삼는 몇몇 정치적인 꼰대 씹새끼들을 제하고 나면, 그냥 입 닥치고 책들 사이에 파묻혀 낑낑거리며 죽네사네 정리하고 쓰고 옮기며 살다 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게 학계이다. 잠자코 있는 나의 스승들, 선배들, 이 길에 들어서려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욕을 먹을 이유는 나는 알지 못한다. 실상, 내게 돌아올 말은 뻔하다. '니나 잘하세요.' 그들이 철학으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든 우주의 진리를 전파하든 정의를 울부짖고 세상을 단죄하든 도를 닦든 상상과 통찰로 돈을 벌어 떵떵 거리고 잘 살든 적어도 그들은 그 만큼의 호응을 얻고 영향력을 갖출 만큼의 실질적인 무언가를 내놓고 해낸 것이고, 나는 내가 옹호하는 입장 안에서도 자격미달인 씨발새끼 아니겠나. 내가 화를 내는 건, 사실은 저 사람들의 몇몇 발언이 내 지극히 개인적인 맥락 속에서 고인드립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나, 나는 다른 누구를 대신해 변호하긴커녕 나 자신을 증명하기에도 한참이나 부족한 배냇병신이다. 아무래도 쳐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보다. 살기로 했고 살고 싶은데 살아도 좋은지에 대해 아직 확신이 없다. 이거 원 염치가 없어서.

3. 내가 들은 것만 플라톤 대화편 강독모임이 서울대 하나, 서강대 하나, 연대 하나(이건 끝났다던가?), 나 지금 들어가고 있는 건대 모임도 있고, 아리스토텔레스 강독도 정암에서 『영혼론』 읽고 서울대에서는 『자연학』 읽고 어르신들끼리 『범주론』 읽는다는 얘기도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푸른 역사인가에서 끼께로 모임 하나, 같은 선생님이 다른 글로 라틴어 강독 또 하나, 생각해 보면 공부할 자리는 참 많다. 연대에서 고전어 강좌가 1, 2로 나뉘어 열리고 서울대에서도 겨울마다 하던 집중강좌가 또 열리고. 듣자하니 숭실대에도 고대철학 전공하는 학생들이 있다 하고 고대에도 있다고 들었다. 자리는 많은데 나는 도통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다. 이 좁아터진 바닥에서 따로따로 나눠먹기라도 하는 중일까? 뭐 이것도 그저 내 오지랖일 따름이겠지만.

4. 나는 '찝적댄다'는 오해를 자주 사는 편이다. 기실 나란 놈이 뭐든 지르고 보는 성격인지라 연애도 꽂히면 일단 왁, 하고 달려들지 간보고 재고 따지고를 못 하는 편인데, 결국 찝적거릴 요량이면 그냥 사귀자고 해보고 차이는지라 저런 오해가 좀 당혹스럽긴 하다. 워낙에 오지랖이 고질병인 인간인지라 특히나 이 놈의 철학과란 바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궁금해하고 별로 관계도 없는데 친한 척하고 그러는 까닭에 별 수 없이 받는 오해라고는 생각한다. 게다가 성적 취향도 남녀불문인지라 여차하면 굉장히 복잡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다. 하지만 저 오해 때문에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궁금하고 알고 싶고 뭔가 도와주고 싶은데도 그러질 못하고 아예 싹 관심을 끊어 버려야 했던 관계들도 꽤 있었다는 거다. 친구의 전애인이나 선배의 애인이나 뭐 타과의 이름 난 미인이라든지 이래저래 마치 나는 추근덕대는 놈이고 상대는 내가 추근덕거려서는 안 되는 사람인 뭐 그런 식의 구도가 되는... 솔직히 귀찮아서 이걸 다 해명하고 오해를 불식시키고 차근차근 대화로 풀어가며 관계를 진전시키거나 유지할 만큼 성실하고 진득한 성격도 못 되고. 애초에 혼자 있는 걸 훨씬 더 좋아라 하고 사람 만나는 걸 애써서 겨우 하는 일로 여기는 주제에 왜 이런 오지랖이 흘러 넘치는지도 스스로 의문스러운 일이긴 한데, 뭐 어쩌겠나, 그렇게 생겨먹은 걸. 그러거나 말거나 짧은 생을 반추해 보면 결국 나 따위야 어떻든 저들 각자 혼자 알아서 나름대로 잘들 살아낼 것이니, 애초에 오해 살 사람한테만 관심 끊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끊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네.

5. 논문 마무리 지으면 마이클 루 『형이상학』도 좀 차근차근 사람들하고 같이 읽고, 히쓰경 수학사나 유클리드 주석서도 사람 모아서 읽어 보고, 가능하면 『파르메니데스』 강독도 하고 그러고 싶다. 다른 대화편도 편별로 대강이나마 좀 줄거리를 정리해서 글로 써서 남겨 놓으면서 다시 읽어 보고, IELTS든 GRE든 영어 공부도 하고 시험도 보고. 지금은 쫓기느라 바쁜 와중이지만 이 과정을 마치면 그래도 몇 개월 정도는 내 멋대로 필사적으로 절실하게 애쓸 그런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뭐 그런 기대를 하는 중이다. 20대를 고스란히 다 가져다 바쳐서 내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고, 붙들고 있던 것들이 죄다 허깨비였고, 나는 빈쭉정이라는 게 만천하에 까발려졌지만, 아직 뒈지진 않았으니 뭔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다. 어깃장을 놓는 것뿐일지라도 최소한의 일관성은 갖추려면, 결국 텅텅 비었으니 뭐라도 채워넣어 보아야 하겠노라 말하고 그 말에 맞게 움직이는 게 옳지 않겠나. 모르긴 몰라도 학문적으로도 사형선고 같은 것이 분명 있을 거다. 민폐이고 해악이니 어서 썩 꺼지라는 불호령이 내린다든지 뭐 그런 어떤 것이, '통과시켜 줄 테니 대충하고 꺼져라'라든지 '너 같은 새끼한텐 십원짜리도 아까우니 돈 없으면 꺼져라'라든지 뭐 그런 게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닌대도 끊임없이 부족하고 어리석고 욕이나 쳐먹고 있다면, 때려 치우지 못할 바에야 안간힘을 써서 붙들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좀 후달리던 참이었는데,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후딱 정신부터 차려야 하겠다. 내가 못 지킨 사람들과 아직 내게 등돌리지 않은 사람들, 뭣보다 일단 내 목숨줄이 내가 아까워서라도, 난 아직 질 수가 없다. 추하게라도, 어쨌든 살아남아야 하겠다. 난 여전히 유들의 결합이 전체와 부분, 운동과 정지를 넣어야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Identity Being과 predicative Being 논의를 구문론과 의미론에 묶어 놓는 한에서야 그런 얘기들이 부담스럽고 억지스럽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길이 있을 것 같다. 헛소리 씨부리지 않고 말이 되게 뭔가 재고를 촉구하는 정도의 이야기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스운 얘기지만, 파르메니데스의 그 긴 시에서 하필 그 부분만 가져다 중심이니 끝이니 떠든 게 그냥 그러진 않았을 테니까. Predication과 participation만으로는 자기술어화도 부정적 자기언급의 역설도 못 피하고 참인 진술들 중에서 정의에 해당하는 진술들을 구별해낼 방법도 없고, 그럼 결국 소피스테스 못 잡으니까. 날고 기는 저 이름 난 학자들이 분명 뭔가 반대든 찬성이든 관련된 이야기의 실마리를 남겨 놓았을 거다. 선입견이기만 하다는 게 확실해진다면 차라리 속시원하게 이 입장 접어 버리고 딴 길로 갈 텐데, 그렇다고 이 얘기가 그렇게나 급진적인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구문론, 의미론 적용하는 게 오히려 역시대착오 아닌가? 형상의 친구들도 거인족도 다 글러 먹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에게서 그 둘 각 입장의 핵심개념을 내다 버리는 것도, 좀 뭔가 아니다 싶고 말이지. 여기서 이러고 떠들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엄서요=ㅁ=....

6. 대자보, 코레일 이래저래 떠들썩한 와중에 난 뭐 말 덧붙일 주제도 못 되고 염치도 없고 해서, 그래도 공감가는 의견 하나를 링크로...

7. 결국 난 뭐 하나라도 나보다 잘난, 그러나 게으르거나 비겁한 자들에게 질색팔색을 하고 욕지기를 뱉는 것 아닐까. 그 좋은 머리와 빠삭한 눈치로 조건도 받쳐주겠다 그냥 주는 거 얌전히 받아만 먹어도 그 비싼 등록금에까지 값하는지야 모르겠지만 술 쳐먹고 이바구나 헛씹어제끼는 것보다는 훨씬 유익할 게 분명한데 지 좆대가리 자랑하듯 되도 않는 허세질에 구라빨이나 세워가며 시간낭비하는 아새끼들이 꼴에 같잖은 꼰대질이나 해대는 씹떡같은 나란 새끼한테 이건 이래요, 저건 저래요 구절구절 짚어가며 말뜻 새기며 따박따박 대꾸하는 그 정도 일조차 못하고 뒤로 혼자 딸딸이치며 교수도 병신 선배도 병신 철학자들 다 병신에 나만 좆나 잘났어, 이 지랄병을 떨고 있으면 거기다 대고 내가 쫌 화를 내기로소니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권위주의에 엄숙주의고 씹꼰대염병이나 되냐. 내가 무슨 나이가 노친네 뒷구녕만큼 쳐먹어서 '어디 어린 놈의 새끼가' 뭐 이딴 소리 한 것도 아니고 '좆도 모르는 게 까불고 자빠졌네' 이 지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러저러하게 써 있는데 내가 이러저러하게 읽었고 근거는 뭐고 논리는 어떠해서 내 주장이 이러저러하니 씨발 반박하라고. ...뭐 다 옛날 얘기다. 또 한 번 꼰대기질 발휘하여 한 마디 하자면 '내 새끼들' 뒈지지 않고 공부할 세상이란 걸 나는 여전히 꿈꾸며 산다. 지혜사랑 아니냐, 영혼이 신들의 가무단을 따라다니며 보았던, 영혼의 날개깃에 물을 대어 적시고 싹을 틔워 키워 날리는, 바로 그 선과 정의와 아름다움, 진리에 대한 사랑 아니냐, 이게 사는 건지 그냥 굴러먹는 건지 고민하고 반추하며 살 만한 삶을 살려는 발버둥이지 않냐, 그것 좀 해 보겠다는 것들 기왕 하는 거 좀 하하호호하며 하면 좀 좋냐. 그런데 그렇지를 못하고, 그렇지 못한 세상이란 게 결국 내가 이날 이때껏 잠자코 기라면 기고 핥으라면 핥아가며 내버려둔 책임이 없을 수 없는 그런 세상이라서, 나는 도무지 씨부리기가 저어되는 것이다. 먹여 살릴 것도 아니면서 내가 뭐라고 철학을 하라느니 말라느니 제대로 하는 게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주둥이 놀리고 앉았겠나, 게다가 여기저기 나보다 잘난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쌔고 쌨는데. 그나마 갈수록 열심히도 하고 잘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에 이래저래 연이 닿아서, 뚜쟁이노릇이나 하며 죄갚음하고 살아야지, 뭐 그런 생각을 하는 요즈음이다. 삶은 삶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학문도 학문 나름으로 또한 그러하게 살아내고 또 해내야만 한다고 믿으면서도, 나는 둘 중 무엇하나 온전히 지켜내질 못하고 있고, 그래서 나는 두 배로 세 배로 욕 먹어야 싼 인생을 보내고 있다. 살아내질 못하고 살아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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