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은 원본 아닌 것이면서 원본을 모방한 것이다. 이 상 중에서 모상은 실제로 닮아 있는 것이고 가상은 닮지 않았는데 닮아 보이는 것이다. 닮지도 않았는데 닮아 보인다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2. 모상은 원본의 비율을 그대로 따른 것, 가상은 원본의 비율을 따르지 않으면서 그럴싸해 보이는 비율을 따른 것.


3. 그렇다면 가상은 원본과 어느 정도까지 단절될 수 있는가? 사과를 원본으로 하고, 코끼리나 삼각형을 가져다가 이름만 "사과"라고 붙이면 이것이 사과의 가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사과와 닮은 것을 제시하면, 이것은 앞선 규정에 따르면 모상이지 가상은 아니게 된다. 회화나 조각에서 가상의 제한조건이 비율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규모의 조각상은 감상자와 가까운 아래쪽을 실제 비율보다 작게, 감사자에게서 먼 위쪽을 실제 비율보다 크게 만든다. 여기에서 상대적 비율을 크게 벗어나 가분수나 역삼각형에 가까운 것을 만들어내면 이는 더 이상 가상이라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말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경우 모순을 피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일종의 논리적 규칙을 따르는 것이 최소한의 조건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과 정합성을 내적으로 갖춘 한에서, 전제가 거짓인지 아닌지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거슬리는 사람을 다 죽여 버리는 것이 정의라고 말할 때, 거슬리니까 죽인다는 정도의 일관성이 있으면 정의가 실제로 무엇인지 전혀 모르더라도 이걸 정의의 가상으로 만들어 내세울 수 있을까? 

* "닮아 보인다"라는 것은 원본과 가상 사이에서 만족되는 조건인가, 아니면 가상과 수용자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것인가, 혹은 그 둘 모두가 어떤 식으로 결합되어 있는가?


4. 원본에 대해 완전하게 단적으로 무지하다면, 예를 들어 "정의"라는 말을 듣고 아무것도 연상하지 못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말해서 마치 외국인처럼 이 소리가 단어라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하다면, 이에 대한 가상 제작도 이 가상을 모상으로나 더 나아가 원본으로 착각하는 기만도 양쪽 다 불가능할 것이다. 

* 여기에서 가상과 원본의 연결을 매개해주는 것으로 모상의 역할을 개입시켜야 하는지?

그러나 대중도 소피스트도 대상 자체나 앎과 관련된 적이 없거나 최소한 없을 수 있다. 문제는 소피스트가 기만하려는 상대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거나 아니면 모르더라도 모종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소피스트가 제작한 가상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우선 가상은 실제로 원본을 닮아 있진 않으며, 상대가 이 가상과는 다른 실제 대상에 대한 앎을 가지고 있거나 이 가상과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 믿음(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게는 이 가상이 닮아 보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상이 가상이기 위해 닮아 보여야만 한다면, 이 닮아 보이게 된다는 상황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5. 가상에 의한 기만은 상대의 무지를 전제해야만 한다. 마지막 분할에 따르면 소피스트는 모순을 강제한다. 반면 전반적인 논의에서 소피스트는 이 모순을 강제받은 상대가 아니라, 전체 과정을 외부에서 지켜보는 감상자들에 의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논박 당하는 상대와 기만 당하는 상대가 단절되어 버린다. 단, 논박 당하는 상대가 기만 대상에 포함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일차적으로 직접적인 소피스트의 행위 대상은 논박 상대이고, 소피스트의 단일한 기술이 정의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의 기술이 적용되는 대상은 바로 이 직접적인 상대여야 할 것이다. 그는 소피스트에 의해 모순에 빠지고, 이 모순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이 틀렸음을,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자임을 확인하게 된다. 반면 소피스트 자신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으며, 이를 알면서 조심스럽게 "아는 척"을 수행한다.

* 사기꾼 선동가와 확신범의 차이랄지. 


말에서 주어가 이어지는 서술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과 같이, 가상과 원본 사이의 관계에서도 모방의 범위가 제한된다고 볼 수 있을까? 참말은 모상, 거짓말은 가상, 말은 상. 이 경우 가상과 원본 사이의 관계에서 주어 역할을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참말은 사실과 닮은 것일 테고, 거짓말은 사실과 다른 것일 텐데, 거짓말이 사실과 닮아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거짓말과 사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거짓말과 화자 그리고 청자 사이의 관계에서 나와야 하지 않나? 대강 뭐 이런 구도.


-蟲-

9. Ἐπὶ μὲν οὖν τῶν ὄντων καὶ γενομένων ἀνάγκη τὴν κα|τάφασιν ἢ

τὴν ἀπόφασιν ἀληθῆ ἢ ψευδῆ εἶναι, καὶ ἐπὶ μὲν || τῶν καθόλου ὡς                 30

καθόλου ἀεὶ τὴν μὲν ἀληθῆ τὴν δὲ ψευδῆ | καὶ ἐπὶ τῶν καθ᾿ 

ἕκαστα, ὥσπερ εἴρηται, ἐπὶ δὲ τῶν | καθόλου μὴ καθόλου ληφ-

θέντων οὐκ ἀνάγκη· εἴρηται δὲ καὶ | περὶ τούτων. ἐπὶ δὲ τῶν καθ᾿

ἕκαστα καὶ μελλόντων οὐχ ὁμοίως.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들과 생성되는 것들에 대하여 부정 또는 긍정이

참 또는 거짓임은 필연적이고, 보편자들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언제나 한편의 주장은 참이고 다른 한편의 주장은 거짓임이 그리고

개별자에 대해서도 그러함이, 논의된 것처럼, 필연적이지만, 보편자에

대해 보편적이지 않게 상정될 때에는 그것이 필연적이지 않다. 이러한

일들에 관련하여서도 논의되었다. 반면 개별적으로 또한 장차의

것들이기도 한 것들에 대해서는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Εἰ γὰρ πᾶσα κατάφασις καὶ ἀπόφασις ἀληθὴς ἢ ψευδής, || καὶ                        35

ἅπαν ἀνάγκη ὑπάρχειν ἢ μὴ ὑπάρχειν, ὥστε εἰ ὁ μὲν | φήσει

ἔσεσθαί τι, ὁ δὲ μὴ φήσει τὸ αὐτὸ τοῦτο, δῆλον ὅτι | ἀνάγκη

ἀληθέυειν τὸν ἕτερον αὐτῶν, εἰ πᾶσα κατάφασις | καὶ ἀπόφασις

ἀληθὴς ἢ ψευδής· ἄμφω γὰρ οὐχ ὑπάρξει | ἅμα ἐπὶ τοῖς τοιόυτοις.

왜냐하면 만일 모든 긍정과 부정이 참이거나 거짓이라면, 또 통틀어

모든 것이 존속하거나 존속하지 않음이 필연적이라면, 그래서 만일

한편에서는 모종의 것이 있으리라 주장할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바로 그 똑같은 바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 중 어느 한쪽이

참이 됨이 필연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만일 모든 긍정과 부정이

참이거나 거짓이라면.

εἰ γὰρ ἀληθὲς εἰπεῖν ὅτι λευκὸν ἢ || ὅτι οὐ λευκόν ἐστιν, ἀνάγκη                18b

εἶναι ἢ λευκὸν ἢ οὐ λευκόν, καὶ εἰ | ἔστιν <ἢ> λευκὸν ἢ οὐ λευκόν,

ἀληθὲς ἦν ἢ φάναι ἢ ἀποφάναι· καὶ | εἰ μὴ ὑπάρχει, ψεύδεται, καὶ

εἰ ψεύδεται, οὐχ ὑπάρχει, | ὥστε ἀνάγκη ἢ τὴν κατάφασιν ἢ τὴν

ἀπόφασιν ἀληθῆ εἶναι || ἢ ψευδῆ.                                                             5

왜냐하면 만일 희다는 것을 말함이나 희지 않다는 것을 말함이 참이라면,

흰 것으로 있거나 희지 않은 것으로 있음이 필연적이고, 또 만일

흰 것으로 있거나 희지 않은 것으로 있다면, 주장하거나 부정함이

참이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존속하지 않는다면, 거짓이

되고, 또 만일 거짓으로 된다면, 존속하지 않기에, 그래서 긍정이나

부정이 참이거나 거짓임은 필연적이다.

Οὐδὲν ἄρα οὔτε ἔστιν οὔτε γίγνεται οὔτε ἀπὸ τύχης οὔτε |

ὁπότερ᾿ ἔτυχεν οὐδὲ ἔσται ἢ οὐκ ἔσται, ἀλλ᾿ ἐξ ἀνάγκης ἅπαν|τα

καὶ οὐχ ὁπότερ᾿ ἔτυχεν ― ἢ γὰρ ὁ φὰς ἀληθεύει ἢ ὁ ἀπο|φάς ―·

ὁμοίως γὰρ ἂν ἐγίγνετο ἢ οὐκ ἐγίγνετο· τὸ γὰρ ὁπότερ᾿ ἔτυχεν |

οὐδὲν μᾶλλον οὕτως ἢ μὴ οὕτως ἔχει ἢ ἕξει.

따라서 아무것도 우연을 통해서든 우발적으로든 존재지도 생성되지도

않고 존재할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도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들이 전부

필연을 통해 우발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러하다(왜냐하면 주장하는 자가

참이거나 아니면 부정하는 자가 참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성되었을 것도 아니고 생성되지 않았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우발적인 것은 그렇지 않기 보다 전혀 더 

그러한 상태로 있지도 않고 있을 것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Ἔτι εἰ ἔστι λευκὸν || νῦν, ἀληθὲς ἦν εἰπεῖν πρότερον ὅτι ἔσται                        10

λευκόν, ὥστε ἀεὶ ἀλη|θὲς ἦν εἰπεῖν ὁτιοῦν τῶν γενομένων ὅτι

ἔσται. εἰ δὲ ἀεὶ | ἀληθὲς ἦν εἰπεῖν ὅτι ἔστιν ἢ ἔσται, οὐχ οἷόν τε

τοῦτο μὴ εἶναι | οὐδὲ μὴ ἔσεσθαι. ὃ δὲ μὴ οἷόν τε μὴ γενέσθαι,

ἀδύνατον μὴ | γενέσθαι· ὃ δὲ ἀδύνατον μὴ γενέσθαι, ἀνάγκη

γενέσθαι. ἅπαντα || οὖν τὰ ἐσόμενα ἀναγκαῖον γενέσθαι. οὐδὲν                      15

ἄρα ὁπότερ᾿ ἔτυχεν | οὐδὲ ἀπὸ τύχης ἔσται· εἰ γὰρ ἀπὸ τύχης, οὐκ

ἐξ ἀνάγκης.

또한 만일 현재 흰 것으로 있다면, 흰 것으로 있을 것이라는 것을

더 먼저 말하는 일이 참이고, 그래서 생성되는 것들 중 그 무엇이든 

그것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말함은 언제나 참이다. 그런데 만일 있다거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말함이 언제나 참이라면, 이것이 있지 않을 수도

있었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런데 생성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생성되지

않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생성되지 않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생성됨이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할 것 전부는 생성되는 일이

필연적이다. 따라서 아무것도 우발적으로든 우연히든 존재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연이라면, 필연을 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Ἀλ|λὰ μὴν οὐδ᾿ ὡς οὐδέτερόν γε ἀληθὲς ἐνδέχεται λέγειν, οἷον

ὅτι | οὔτε ἔσται οὔτε οὐκ ἔσται. πρῶτον μὲν γὰρ οὔσης τῆς κατα-

φάσεως | ψευδοῦς ἡ ἀπόφασις οὐκ ἀληθής, καὶ ταύτης ψευδοῦς

οὔσης τὴν || κατάφασιν συμβαίνει μὴ ἀληθῆ εἶναι. καὶ πρὸς                            20

τούτοις, εἰ | ἀληθὲς εἰπεῖν ὅτι λευκὸν καὶ μέγα, δεῖ ἄμφω

ὑπάρχειν, εἰ | δὲ ὑπάρξει εἰς αὔριον, ὑπάρξειν εἰς αὔριον. εἰ δὲ

μήτε ἔσται | μήτε μὴ ἔσται αὔριον, οὐκ ἂν εἴη ὁπότερ᾿ ἔτυχεν, οἷον

ναυ|μαχία· δέοι γὰρ ἂν μήτε γενέσθαι ναυμαχίαν μήτε || μὴ                           25

γενέσθαι. |

그러나 물론 둘 중 어느 쪽이든 참이 아니라고 말하는 일이 허용되지는

않는데, 예를 들어 있을 것도 아니고 있지 않을 것도 아니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선 긍정이 거짓임에도 부정이 참이

아니고, 또한 이 부정이 거짓임에도 긍정이 참이지 않은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에 더하여, 만일 희고 크다는 것을

말함이 참이라면, 그 양자 모두가 존속해야 하고, 그런데 만일

내일 존속할 것이라면, 내일 존속할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내일 있을 것도 아니고 있지 않을 것도 아니라면, 있지 않을

것이 우발적으로 있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해전처럼.

즉 해전이 일어나지도 않아야 하고 일어나지 않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Τὰ μὲν δὴ συμβαίνοντα ἄτοπα ταῦτα καὶ τοιαῦτα | ἕτερα,

εἴπερ πάσης καταφάσεως καὶ ἀποφάσεως, ἢ ἐπὶ τῶν | καθόλου

λεγομένων ὡς καθόλου ἢ ἐπὶ τῶν καθ᾿ ἕκαστα, ἀνάγκη | τῶν

ἀντικειμένων εἶναι τὴν μὲν ἀληθῆ τὴν δὲ ψευδῆ, μηδὲν || δὲ                          30

ὁπότερ᾿ ἔτυχεν εἶναι ἐν τοῖς γιγνομένοις, ἀλλὰ πάντα | εἶναι καὶ

γίγνεσθαι ἐξ ἀνάγκης. ὥστε οὔτε βουλεύεσθαι δέοι | ἂν οὔτε

πραγματεύεσθαι, ὡς ἐὰν μὲν τοδὶ ποιήσωμεν, ἔσται | τοδί, ἐὰν δὲ

μὴ τοδί, οὐκ ἔσται. οὐδὲν γὰρ κωλύει καὶ εἰς | μυριοστὸν ἔτος τὸν

μὲν φάναι τοῦτο ἔσεσθαι τὸν δὲ μὴ φά||ναι, ὥστε ἐξ ἀνάγκης                          35

ἔσεσθαι ὁποτερονοῦν αὐτῶν ἀληθὲς ἦν | εἰπεῖν τότε.

그리하여 그 결론들은 이러한 그리고 이런 종류의 또 다른 이상한 것들이다,

만일 모든 긍정과 부정이, 보편자에 관하여 보편적으로 서술되든 개별자에

관하여 서술되든, 대립되는 서술들 중 한편은 참이고 다른 한편은 거짓임이

필연적이라면, 그런데 생성되는 것들에 있어서 아무것도 우발적이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또한 생성된다면. 그래서

고려할 필요도 문제 삼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만일 한편으로 우리가

이러저러한 것을 행한다면, 이러저러한 것이 있을 것이고, 다른 한편

이러저러한 것을 그리하지 않는다면, 있지 않을 것인지. 왜냐하면 수 만 년에

이르기까지도 한 사람은 이러한 일이 있으리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자는

부정하는 일을 아무것도 막지 않고, 그래서 둘 중 어느 쪽이든 참을 말했던

그 때 그것이 필연적으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Ἀλλὰ μὴν οὐδὲ τοῦτο διαφέρει, εἴ τινες εἶπον τὴν | ἀντίφασιν ἢ

μὴ εἶπον. δῆλον γὰρ ὅτι οὕτως ἔχει τὰ πράγ|ματα, κἂν μὴ ὁ μὲν

καταφήσῃ τι, ὁ δὲ ἀποφήσῃ· οὐ γὰρ | διὰ τὸ καταφαθῆναι ἢ

ἀποφαθῆναι ἔσται ἢ οὐκ ἔσται, οὐδ᾿ εἰς || μυριοστὸν ἔτος μᾶλλον ἢ             19a

ἐν ὁποσῳοῦν χρόνῳ. ὥστε εἰ ἐν ἅπαντι | χρόνῳ οὕτως εἶχεν ὥστε

τὸ ἕτερον ἀληθεύεσθαι, <ἀεὶ> ἀναγκαῖον | ἦν τοῦτο γενέσθαι, καὶ

ἕκαστον τῶν γενομένων ἀεὶ οὕτως εἶχεν | ὥστε ἐξ ἀνάγκης

γενέσθαι. ὅ τε γὰρ ἀληθῶς εἶπέ τις ὅτι || ἔσται, οὐχ οἷόν τε μὴ                          5

γενέσθαι· καὶ τὸ γενόμενον ἀληθὲς ἦν | εἰπεῖν ἀεὶ ὅτι ἔσται. |

그러나 물론, 어떤 이들이 모순을 말했든 말하지 않았든 이것이 차이를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설령 누군가는 모종의 것을 긍정할 것이고,

또 다른 자는 부정할 것이라 할지라도, 사태들이 그러하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긍정되거나 부정되는 일로 인하여 있을 것이거나

있지 않을 것이 아니고, 수 만 년 후이든 다른 그 어떤 시간에서든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만일 다른 쪽이 참이 되도록 그런 식으로

모든 시간에 상황이 그러하다면, <언제나> 이 일이 발생됨이 필연적이었고,

발생한 일들 각각은 언제나 필연적으로 발생되도록 그런 식일 것이다.

왜냐하면 있으리라고 누군가 참되게 주장할 때, 생성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생성되고 있는 것을 두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언제나 참이다.

Εἰ δὴ ταῦτα ἀδύνατα ― ὁρῶμεν γὰρ ὅτι ἔστιν ἀρχὴ | τῶν

ἐσομένων καὶ ἀπὸ τοῦ βουλεύεσθαι καὶ ἀπὸ τοῦ πρᾶξαί | τι, καὶ

ὅτι ὅλως ἔστιν ἐν τοῖς μὴ ἀεὶ ἐνεργοῦσι τὸ δυνατὸν || εἶναι καὶ μή,                    10

ἐν οἷς ἄμφω ἐνδέχεται, καὶ τὸ εἶναι | καὶ τὸ μὴ εἶναι, ὥστε καὶ τὸ

γενέσθαι καὶ τὸ μὴ γενέσθαι· | καὶ πολλὰ ἡμῖν δῆλά ἐστιν οὕτως

ἔχοντα, οἷον ὅτι τουτὶ τὸ | ἱμάτιον δυνατόν ἐστι διατμηθῆναι καὶ

οὐ διατμηθήσεται, ἀλλ᾿ | ἔμπροσθεν κατατριβήσεται· ὁμοίως δὲ

καὶ τὸ μὴ διατμη||θῆναι δυνατόν· οὐ γὰρ ἂν ὑπῆρχει τὸ ἔμπροσθεν                   15

αὐτὸ κατα|τριβῆναι, εἴγε μὴ δυνατὸν ἦν τὸ μὴ διατμηθῆναι· ὥστε

καὶ | ἐπὶ τῶν ἄλλων γενέσεων, ὅσαι κατὰ δύναμιν λέγονται τὴν |

τοιαύτην ―, φανερὸν ἄρα ὅτι οὐχ ἅπαντα ἐξ ἀνάγκης οὔτε ἔστιν |

οὔτε γίγνεται, ἀλλὰ τὰ μὲν ὁπότερ᾿ ἔτυχε καὶ οὐδὲν μᾶλλον || ἡ                        20

κατάφασις ἢ ἡ ἀπόφασις ἀληθής, τὰ δὲ μᾶλλον μὲν καὶ | ὡς ἐπὶ τὸ

πολὺ θάτερον, οὐ μὴν ἀλλ᾿ ἐνδέχεται γενέσθαι καὶ | θάτερον,

θάτερον δὲ μή. |

그리하여 이러한 일들이 불가능하다면―왜냐하면 우리는 있을 것들의

기원이 모종의 것을 고려함으로부터 그리고 수행함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있음과 있지 않음이 가능한 것은 이 양자를 그

안에 허용하는 바 항상 현실화되어 있지는 않은 것들 안에 전반적으로

속하여 있고, 있다는 것과 있지 않다는 것 모두가 속하여 있으며, 그래서

생성된다는 것과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속하여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는 것은 여러 지점에서 우리에게

분명한데, 예를 들어 여기 이 옷은 잘리는 일이 가능한 것이자 또한 

잘리지 않고 오히려 그보다 먼저 해어질 것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잘리지 않는 일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보다 먼저

해어진다는 것이 존속하지 못할 터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만일 잘리지

않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래서 여타의, 이러한 종류의 

가능성에 따라 말해진, 그러한 생성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통틀어

모든 것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생성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어떤 것들은 우발적로 그리하며 긍정이 부정보다 전혀 더 참된 것도

아닌데, 어떤 것들은 더 많이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 둘 중) 어느

한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쪽도 생성되는 일이 허용되며,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 

Τὸ μὲν οὖν εἶναι τὸ ὄν, ὅταν ᾖ, καὶ τὸ μὴ ὂν μὴ εἶναι, | ὅταν

μὴ ᾖ, ἀνάγκη· οὐ μέντοι οὔτε τὸ ὂν ἅπαν ἀνάγκη εἶναι οὔτε || τὸ                       25

μὴ ὂν μὴ εἶναι. οὐ γὰρ ταὐτόν ἐστι τὸ ὂν ἅπαν εἶναι ἐξ | ἀνάγκης,

ὅτε ἔστιν, καὶ τὸ ἁπλῶς εἶναι ἐξ ἀνάγκης· ὁμοίως | δὲ καὶ ἐπὶ τοῦ

μὴ ὄντος. καὶ ἐπὶ τῆς ἀντιφάσεως ὁ αὐτὸς | λόγος. εἶναι μὲν <δὴ> ἢ

μὴ εἶναι ἅπαν ἀνάγκη καὶ ἔσεσθαί γε | ἢ μή· οὐ μέντοι διελόντα

γε εἰπεῖν θάτερον ἀναγκαῖον. λέγω || δέ, οἷον ἀνάγκη μὲν ἢ                             30

ἔσεσθαι ναυμαχίαν αὔριον ἢ μὴ ἔσεσθαι, | οὐ μέντοι γενέσθαι ναυ-

μαχίαν αὔριον ἀναγκαῖον οὐδὲ μὴ | γενέσθαι· γενέσθαι μέντοι ἢ

μὴ γενέσθαι ἀναγκαῖον.

그러므로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있을 때, 그리고 있지 않은

것이 있지 않다는 것은, 그것이 있지 않을 때, 필연적이다. 그렇지만

있는 것 전부가 필연적으로 있지도 않고 있지 않은 것이 필연적으로

있지 않지도 않다. 왜냐하면 '있는 경우에, 있는 것 전부가 필연적으로

있다는 것'과 '필연적으로 단적으로(무조건적으로) 있다는 것'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있지 않은 것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모순의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전부 필연적으로

있거나 있지 않고 게다가 있을 것이거나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들을 분할하며 둘 중 한쪽을 필연적인 것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바는, 이를 테면 내일 해전이 있을 것이거나 있지 않을

것임이 필연적이지만, 내일 해전이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

생성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성되거나 아니면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Ὥστε ἐπεὶ | ὁμοίως οἱ λόγοι ἀληθεῖς ὥσπερ τὰ πράγματα,

δῆλον ὅτι | ὅσα οὕτως ἔχει ὥστε ὁπότερ᾿ ἔτυχε καὶ τὰ ἐναντία

ἐνδέχεσθαι, || ἀνάγκη ὁμοίως ἔχειν καὶ τὴν ἀντίφασιν. ὅπερ                             35

συμβαίνει ἐπὶ | τοῖς μὴ ἀεὶ οὖσιν ἢ μὴ ἀεὶ μὴ οὖσιν. τούτων γὰρ

ἀνάγκη μὲν | θάτερον μόριον τῆς ἀντιφάσεως ἀληθὲς εἶναι ἢ

ψεῦδος, οὐ | μέντοι τόδε ἢ τόδε, ἀλλ᾿ ὁπότερ᾿ ἔτυχεν, καὶ μᾶλλον

μὲν | ἀληθῆ τὴν ἑτέραν, οὐ μέντοι ἤδη ἀληθῆ ἢ ψευδῆ.

그래서 사태들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문장들이 참이기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반대항들을 허용하도록 그런 식으로 있는 것들은,

모순주장 역시 그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지니는 일이 필연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항상 존재하지는 않는 것들과 항상 존재하지 않지는

않는 것들에 대해 귀결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에 대한 모순의 둘 중 한 부분은 필연적으로 참이거나 아니면

거짓이지만, 특정한 이것이나 저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것이 그러하고,

어느 한쪽이 더 많이 참이지만, 이미 참이거나 거짓인 것은 아니다. 

Ὥστε δῆλον || ὅτι οὐκ ἀνάγκη πάσης καταφάσεως καὶ                               19b

ἀποφάσεως τῶν ἀν|τικειμένων τὴν μὲν ἀληθῆ τὴν δὲ ψευδῆ εἶναι·

οὐ γὰρ ὥσπερ | ἐπὶ τῶν ὄντων, οὕτως ἔχει καὶ ἐπὶ τῶν μὴ ὄντων [μὲν],

δυνατῶν | δὲ εἶναι ἢ μὴ εἶναι, ἀλλ᾿ ὥσπερ εἴρηται. ||

그리하여 대립된 모든 긍정과 부정이 한편은 참이고 다른 쪽은 거짓임이

필연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있는 것들의 경우에 그러하듯,

있지 않지만 있음 혹은 있지 않음이 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것은 

아니고, 후자에 대해서는 이야기된 대로이기 때문이다. 


-蟲-

7. Ἐπεὶ δὲ ἐστι τὰ μὲν καθόλου τῶν πραγμάτων, τὰ δὲ | καθ᾿

ἕκαστον ― λέγω δὲ καθόλου μὲν ὃ ἐπὶ πλειόνων πέφυκε || κατ-                 40

ηγορεῖσθαι, καθ᾿ ἕκαστον δὲ ὃ μή, οἷον ἄνθρωπος μὲν || τῶν                17b

καθόλου, Καλλίας δὲ τῶν καθ᾿ ἕκαστον ―, ἀνάγκη δὲ | ἀπο-

φαίνεσθαι ὡς ὑπάρχει τι ἢ μὴ ὁτὲ μὲν τῶν καθόλου | τινὶ, ὁτὲ δὲ

τῶν καθ᾿ ἕκαστον, ἐὰν μὲν οὖν καθόλου ἀποφαίνη|ται ἐπὶ τοῦ

καθόλου ὅτι ὑπάρχει τι ἢ μή, ἔσονται ἐναντίαι || ἀποφάνσεις ―                   5

λέγω δὲ ἐπὶ τοῦ καθόλου ἀποφαίνεσθαι καθ|όλου, οἷον πᾶ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οὐδεὶ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 ὅταν | δὲ ἐπὶ τῶν

καθόλου μέν, μὴ καθόλου δέ, αὗται μὲν οὐκ εἰσὶν | ἐναντίαι, τὰ

μέντοι δηλούμενα ἔστιν εἶναι ἐναντία ποτέ ― λέγω | δὲ τὸ μὴ

καθόλου ἀποφαίνεσθαι ἐπὶ τῶν καθόλου, οἷον ἔστι || λευκὸς                       10

ἄνθρωπος, οὐκ ἔστι λευκὸς ἄνθρωπος· καθόλου γὰρ ὄντος | τοῦ

ἄνθρωπος οὐχ ὡς καθόλου κέχρηται τῇ ἀποφάνσει· τὸ | γὰρ πᾶς

οὐ τὸ καθόλου σημαίνει, ἀλλ᾿ ὅτι καθόλου.

사태들 중에는 한편으로는 보편자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자가 

있기에 ― 나는 본성상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서술되는 바의 것은 

보편자로, 그렇지 않은 것은 개별자로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보편자에 속하고, 칼리아스는 개별자에 속한다 ―, 때로는 보편자 중 

무언가에게 무엇이 존속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때로는 개별자 중에서 

그런 식으로 주장함이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만일 한편으로 보편자에 

대해 무언가가 존속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이 보편적으로 주장된다면, 

반대 주장들이 있게 될 것이고 ― 보편자에 대해 보편적으로 주장된다는 

것은, 이를 테면 "모든 인간은 희다(every human is white)," "어떤 인간도 

희지 않다(no-one human is white)" 등을 말한다. ―, 보편자에 대해서이지만,

보편적이지 않게 주장된다면, 이 주장들은 반대 주장들로 있지 않지만,

반면에 모종의 경우에 반대항들로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들은 있다.

― 보편자들에 대해 보편적이지 않게 주장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인간이 희다," "인간이 희지 않다" 등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보편적으로

있더라도 해당 주장에 의해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으로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즉 "모든"이란 것은 보편자를 지시하지는 않지만, 보편적으로

있다는 점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 Definition의 경우 katholou 서술인지, to katholou가 주어인지, to katholou가 아니라면

그것은 실체인지, 형상인지, 질료인지. 

Ἐπὶ δὲ τοῦ | κατηγορουμένου καθόλου τὸ καθόλου κατηγορεῖν

καθόλου οὐκ ἔστιν ἀλη|θές· οὐδεμία γὰρ κατάφασίς <γε> ἀληθὴς

ἔσται, ἐν ᾗ τοῦ κατη||γορουμένου καθόλου τὸ καθόλου <καθόλου>              15

κατηγορηθήσεται, οἷον ἔστι πᾶς | ἄνθρωπος πᾶν ζῷον.

보편적으로 서술된 것에 대해 보편자를 보편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은 

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보편적으로 서술된 것의 보편자가 

<보편적으로> 서술될 그러한 단 하나의 긍정도 참이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모든 동물이다." 같은 것이 그러하다.

Ἀντικεῖσθαι μὲν οὖν κατάφασιν ἀπο|φάσει λέγω ἀντιφατικῶς

τὴν τὸ καθόλου <ὅτι καθόλου> σημαίνουσαν <τῇ> τὸ | αὐτὸ ὅτι οὐ 

καθόλου, οἷον πᾶ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 οὐ πᾶς |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οὐδεὶ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 ἔστι τι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ἐναντίως δὲ              20

τὴν τοῦ καθόλου <καθόλου> κατάφασιν καὶ | τὴν τοῦ καθόλου

<καθόλου> ἀπόφασιν, οἷον | πᾶς ἄνθρωπος δίκαιος ― οὐδεὶς ἂν-

θρωπος | δίκαιος. διὸ ταύτας μὲν οὐχ οἷόν τε ἅμα ἀληθεῖς εἶναι, |

τὰς δὲ ἀντικειμένας αὐταῖς ἐνδέχεταί ποτε ἐπὶ τοῦ αὐτοῦ, || οἷον οὐ               25

πᾶ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καὶ ἔστι | τι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그러므로 긍정은 부정과 대립된다고 말할 때 나는 보편자가 보편적으로

있다는 것을 지시한 긍정이 바로 그 보편자가 보편적이지 않게 있다는

것을 지시한 부정과 모순적으로 대립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희다/모든 인간이 희지는 않다," "어떤 인간도 희지

않다/어떤 인간은 희다." 다른 한편 보편자에 대해 보편적으로

수행되는 긍정과 보편자에 대해 보편적으로 [수행되는] 부정은 반대되는

방식으로 대립된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정의롭다/어떤 인간도

정의롭지 않다." 이로 인해 이러한 주장들(모순쌍, 반대쌍)은 동시에 

참일 수 없고, 그것들과 대립되는 주장들은 경우에 따라 같은 것에 대해 

(참임이) 허용된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이 희지는 않다"와 

"어떤 인간은 희다."

* 보편적으로 서술된 것과 보편적이지 않게 서술된 것 사이의 긍정과 부정 대립이 모순대립.

  (일단 주어는 계속 보편자가 나오고 있고.)

  모순의 고사성어는 창과 방패 다 "모든 경우"이기에 논리적 모순관계가 아님. 주의.

Ὅσαι μὲν οὖν ἀντιφάσεις τῶν καθόλου | εἰσὶ καθόλου, ἀνάγκη

τὴν ἑτέραν ἀληθῆ εἶναι ἢ ψευδῆ, καὶ | ὅσαι ἐπὶ τῶν καθ᾿ ἕκαστα,

οἷον ἔστι Σωκράτης λευκός ― οὐκ | ἔστι Σωκράτης λευκός· ὅσαι

δὲ ἐπὶ τῶν καθόλου μέν, μὴ καθ||όλου δέ, οὐκ ἀεὶ ἡ μὲν ἀληθὴς ἡ                  30

δὲ ψευδής· ἅμα γὰρ ἀλη|θές ἐστιν εἰπεῖν ὅτι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λευκὸς καὶ ὅτι οὐκ ἔστιν |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καὶ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καλός, καὶ οὐκ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καλός. [εἰ γὰρ αἰσχρός, καὶ οὐ

καλός· καὶ εἰ γίγνεταί | τι, καὶ οὐκ ἔστιν.] δόξειε δ᾿ ἂν ἐξαίφνης

ἄτοπον εἶναι διὰ τὸ || φαίνεσθαι σημαίνειν τὸ οὐκ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35

λευκός ἅμα καὶ | ὅτι οὐδεὶ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τὸ δὲ οὔτε ταὐτὸν

σημαίνει οὔθ᾿ | ἅμα ἐξ ἀνάγκης. |

그러므로 보편자에 대해 보편적인 모순주장(쌍)은, 둘 중 하나가 

참이거나 아니면 거짓임이 필연적이고, 개별자에 대한 모순주장(쌍)도,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희다/소크라테스는 희지 않다" 역시 그러하다.

반면 보편자에 대해서, 그러나 보편적이지 않게 [수행되는] 모순주장(쌍)은,

항상 한편은 참이고 다른 한편은 거짓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희다라는 것과 인간이 희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

훌륭하고 인간이 훌륭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동시에 참이기

때문이다. [즉 만일 추하다면, 훌륭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종의 것이 그렇게 된다면, 그렇게 있지는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a)"인간이 희지 않다"라는 것이 동시에 어떤 인간도 희지 

않다는 것까지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으로 인해 즉각적으로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것을 지시하지도 않고 

또한 필연적으로 동시에 지시하는 것도 아니다.

* 인간이 희다/인간이 희지 않다 동시에 참. 그러나 인간이 희지 않다가 

어떤 인간도 희지 않다를 함의하는 것처럼 보여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후자는 보편자, 전자는? 이렇게 구분된다고 볼 경우 휘태커의 입장을

지지해주는 문헌근거일 수 있다. 그러나 휘태커는 여기에서 전체 주제인

모순에 대해 예외가 되는 사례를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다고 지적.

인간은 우연적으로 희기도 하고 희지 않기도 하다(둘 모두 참).

여기에서 "인간이 희지 않다"의 "인간"이 소크라테스라면?

어쨌든 계속 보편자를 가리키나, 아니면 한쪽은 보편자, 다른 쪽은 

형상을 가리키나? "같은 것"은 대상인지 아니면 사건인지. 


* (a)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인간은 희지 않다"를 

"아무도 희지 않다"로 이해한다는 것. 그렇다면 

그렇게 이해할 여지가 생기는 이유는?

인간이 이성적이다와 이성적이지 않다 모두 참이면서

인간의 정의는 이성적이다라면?


*보편자에 대한 서술과 실체 혹은 형상에 대한 서술이 구분되고

 다시 본질, 정의 차원의 서술과 일반, 필연/우연, 속성귀속 서술이 구분되나?

총 네 경우가 나오는 것인가? 


* 문제는 여기에서 "인간"이 일관되게 보편자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

위의 문제제기들은 보편자와 실체(또는 형상, 자연종)가 구분된다는 가정에 의거하는데,

그런 식의 구분은 보이지 않는다. 


구조분석 이전의, 이항술어("무엇"의 실체)로서의 실체가 이 단계까지의 실체,

이후 형이상학적 논의에서 본질과 형상, 질료 등의 구조분석 이후의 실체가 고려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Cf. 『형이상학』 Ζ 10~13? 


Φανερὸν δὲ ὅτι καὶ μία ἀπόφασις μιᾶς καταφάσεως· | τὸ γὰρ

αὐτὸ δεῖ ἀποφῆσαι τὴν ἀπόφασιν ὅπερ κατέ||φησεν ἡ κατάφασις,                  40

καὶ ἀπὸ τοῦ αὐτοῦ, ἢ τῶν καθ᾿ ἕκαστά || τινος ἢ ἀπὸ τῶν καθόλου            18a

τινός, ἢ ὡς καθόλου ἢ μὴ ὡς καθόλου. | λέγω δέ, οἷον ἔστι

Σωκράτης λευκός ― οὐκ ἔστι Σωκράτης λευ|κός. ἐὰν δὲ ἄλλο τι ἢ

απ᾿ ἄλλου τὸ αὐτό, οὐχ ἡ ἀντικει|μένη, ἀλλ᾿ ἔσται ἐκείνης ἑτέρα.

τῇ δὲ πᾶ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 ἡ οὐ πᾶ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τῇ δὲ τὶς                 5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ἡ οὐ|δεὶ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τῇ δὲ ἔστιν ἄν-

θρωπος λευκός ἡ οὐκ ἔστιν |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

반면 단일 부정이 단일 긍정에 대한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왜냐하면 

해당 긍정이 긍정한 바로 그것을 해당 부정이 부정해야 하고, 바로 그로부터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종의 개별자에 대해서든 모종의 보편자에 

대해서든, 보편적으로든 보편적인 방식으로서가 아니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를 테면 "소크라테스는 희다/소크라테스는 희지 않다"의 

경우이다. 그런데 만일 여타의 모종의 것을 부정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여타의 것에 대해 부정한다면, 대립되는 주장이 아니라, 저 주장과 다른

주장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희다"라는 긍정에 "모든 인간이 희지는 

않다"라는 부정이, "어떤 인간이 희다"라는 긍정에 "어떤 인간도 희지 

않다"라는 부정이, "인간은 희다"라는 긍정에 "인간은 희지 않다"라는 

부정이 대립되는 주장이다.

Ὅτι μὲν οὖν μία κατάφασις μιᾷ ἀποφάσει ἀντίκειται |

ἀντιφατικῶς, καὶ τίνες εἰσὶν αὗται, εἴρηται, καὶ ὅτι αἱ ἐναν||τίαι                       10

ἄλλαι, καὶ τίνες εἰσὶν αὗται, εἴρηται, καὶ ὅτι οὐ πᾶσα | ἀληθὴς ἢ

ψευδὴς ἀντίφασις, καὶ διὰ τί, καὶ πότε ἀληθὴς | ἢ ψευδής. |

이리하여 단일 긍정이 단일 부정에 모순적으로 대립된다는 점, 그리고

어떤 주장들이 이러한 주장들인지, 그것이 논의되었고, 여타의 주장들은

반대주장들이라는 점, 그리고 어떤 주장들이 이러한 것들인지, 이 또한

논의되었으며, 모든 모순주장이 참이거나 아니면 거짓인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러한지, 또 어떤 경우에 참이거나 아니면

거짓인지도 논의되었다.


8. Μία δέ ἐστι κατάφασις καὶ ἀπόφασις ἡ ἓν καθ᾿ ἑνὸς | σημαίνουσα,

ἢ καθόλου ὄντος καθόλου ἢ μὴ ὁμοίως, οἷον πᾶς || ἄνθρωπος λευ-                  15

κός ἐστιν ― οὐκ ἔστι πᾶ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ἔστιν |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 οὐκ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οὐδεὶς ἄνθρωπος | λευκός

― ἔστι τις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εἰ τὸ λευκὸν ἓν σημαίνει. | εἰ δὲ δυοῖν

ἓν ὄνομα κεῖται, ἐξ ὧν μή ἐστιν ἕν, οὐ μία κατά|φασις οὐδὲ

ἀπόφασις μία. οἷον εἴ τις θεῖτο ὄνομα ἱμάτιον || ἵππῳ καὶ                               20

ἀνθρώπῳ, τὸ ἔστιν ἱμάτιον λευκόν, αὕτη οὐ μία κα|τάφασις [οὐδὲ

ἀπόφασις μία]· οὐδὲν γὰρ διαφέρει τοῦτο εἰπεῖν | ἢ ἔστιν ἵππος

καὶ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τοῦτο δὲ οὐδὲν διαφέρει | τοῦ εἰπεῖν ἔστιν

ἵππος λευκός, καὶ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εἰ | οὖν αὗται πολλὰ

σημαίνουσι καὶ εἰσὶ πολλαί, δῆλον ὅτι καὶ || ἡ πρώτη ἤτοι πολλὰ                     25

ἢ οὐδὲν σημαίνει· οὐ γάρ ἐστί τις ἄν|θρωπος ἵππος. ὥστε οὐδ᾿ ἐν

ταύταις ἀνάγκη τὴν μὲν ἀληθῆ | τὴν δὲ ψευδῆ εἶναι ἀντίφασιν. |

8. 단일자에 따라 단일자를 지시한, 또는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보편적으로 또는 마찬가지이지 않은 방식으로 지시한 긍정과

부정은 단일하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희다/모든 인간이 흰 것은

아니다," "인간이 희다/인간이 희지 않다," "어떤 인간도 희지 않다/어떤

인간은 희다"가, 만일 "흰 것"이 단일자를 지시한다면 그러하다. 그런데

만일 단일한 이름이 단일한 것을 구성하지 못하는 한쌍에 대해 부여된다면,

단일 긍정도 아니고 단일 부정도 아니다. 예를 들어 만일 누군가가 "옷"이란

이름을 말과 사람에 부여한다면, "옷이 희지 않다"라는 것, 이것은 단일

긍정이 아니다 [그리고 단일 부정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말하는 것이나

"말 그리고 인간이 희다"를 말하는 것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런데 이는

"말이 희다," 그리고 "인간이 희다"를 말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이러한 주장들이 여러가지 것들을 지시하고 또

여러 주장들로 있다면, 첫 번째 주장 또한 여러가지 것들을 지시하거나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거나 한다는 점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모종의 인간은

말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주장들 중에서 한편은 참이고 다른

한편은 거짓인 모순주장이 있음이 필연적이지도 않다.


- 단일/다수, 단순/복합. 예를 들어 Syllogism은 접속사 연결의 경우 복합적 단일문장이라 볼 수 있는지? 

11장, "하나가 여럿에 대해 긍정되거나 부정, 여럿이 하나에 대해 긍정되거나 부정." 

여기에서 여럿은 여럿으로 구성된 '하나'는 아니라는 조건 하에.


소크라테스는 걸어가는 하얀 사람이다. 술어 여럿은 그로부터 하나가 구성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두 발 달린 이성적 동물이다. 술어 여럿은 그로부터 하나가 구성된다. 

* 우리 집 정원의 나무는 세 그루이다. / 우리 집 정원의 나무는 '모두' 푸르다.

전자는 집합에 대한 서술, 후자는 원소에 대한 서술. 

이 경우 소크라테스라는 원소와 소크라테스만을 원소로 갖는 집합이 구분되어야 한다.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특정 집합의 원소들 사이에서는 본질적 결합, 하나로 구성됨이 있는 반면

다른 집합의 원소들 사이에서는 부수적, 우연적 결합만 있다는 구분을 추가하고 있는가?


바이데만:

 

 

 

단일명제

 

 

 

 

단순명제

 

 

 

복합명제

 

긍정문

 

부정문

 

 

 

 



-蟲- 

4. Λόγος δὲ ἐστι φωνὴ σημαντική, ἧς τῶν | μερῶν τι σημαντικόν

ἐστι κεχωρισμένον, ὡς φάσις, ἀλλ᾿ | οὐχ ὡς κατάφασις. λέγω δέ,

οἷον ἄνθρωπος ση|μαίνει τι, ἀλλ᾿ οὐκ ὅτι ἔστιν ἢ οὐκ ἔστιν· ἀλλ᾿

ἔσται κα||τάφασις ἢ ἀπόφασις, ἐάν τι προστεθῇ. ἀλλ᾿ οὐχὶ τοῦ                       30

ἀν|θρώπου συλλαβὴ μία· οὐδὲ γὰρ ἐν τῷ μῦς τὸ ῦς σημαντικόν, |

ἀλλὰ φωνή ἐστι νῦν μόνον. [ἐν δὲ τοῖς διπλοῖς σημαίνει μέν, | ἀλλ᾿ 

οὐ καθ᾿ αὑτό, ὡς προείρηται.] ||

말은 지시적 음성언어로, 그 음성언어의 부분들 중 모종의 지시적 

부분(이름?)이 언표로서 독립되어 있지만, 긍정으로서 있지는 

않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를 들어 "인간"은 

모종의 것을 지시하지만, 그것이 있다(or 그것이다) 혹은 있지 않다(or 

그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지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종의 것이 추가된다면, 긍정 혹은 부정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음절만으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거북" 내에서 

"북" 또한 지시적이지 않고, 오히려 실상은 단지 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중으로 된 것들 내에서는 한편으로 지시하기는 

하나, 자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한 바와 같다.]

Ἔστι δὲ λόγος ἅπας μὲν σημαντικός, οὐχ ὡς ὄργανον | δέ,                       17a

ἀλλ᾿ ὥσπερ εἴρηται, κατὰ συνθήκην. ἀποφαντικὸς δὲ | οὐ πᾶς,

ἀλλ᾿ ἐν ᾧ τὸ ἀληθεύειν ἢ ψεύδεσθαι ὑπάρχει. οὐκ | ἐν ἅπασι δὲ

ὑπάρχει, οἷον ἡ εὐχὴ λόγος μέν, ἀλλ᾿ οὔτε || ἀληθὴς οὔτε ψευδής.                    5

οἱ μὲν οὖν ἄλλοι ἀφείσθωσαν· ῥητορι|κῆς γὰρ ἢ ποιητικῆς

οἰκειοτέρα ἡ σκέψις· ὁ δὲ ἀποφαν|τικὸς τῆς νῦν θεωρίας. |

모든 말은 지시적이나, 도구로서가 아니라, 이야기된 대로, 협약에

따라 그러하다. 그러나 모든 진술이 서술적인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참이나 거짓이 성립하는 진술이 그러하다. 그런데 모든 진술 내에서

[진리치가] 성립하는 것은 아닌 바, 예를 들어 기원은 진술이긴 하나,

참도 거짓도 아니다. 그러므로 여타의 진술들은 배제시키기로 하자.

왜냐하면 그 고찰이 수사학이나 시학에 더욱 고유한 문제인 반면,

서술적인 진술이 지금의 탐구에 속하기 때문이다.


5. Ἔστι δὲ εἷς πρῶτος λόγος ἀποφαντικὸς κατάφασις, | εἶτα ἀπό-

φασις· οἱ δὲ ἄλλοι πάντες συνδέσμῳ εἷς.

일차 단일 서술 말은 긍정이고, 그 다음은 부정이다. 여타의

서술 말들 모두는 결속에 의해 단일 말로 있다.

Ἀνάγκη || δὲ πάντα λόγον ἀποφαντικὸν ἐκ ῥήματος εἶναι ἢ                           10

πτώσεως | ῥήματος· καὶ γὰρ ὁ τοῦ ἀνθρώπου λόγος, ἐὰν μὴ τὸ

ἔστιν ἢ | ἦν ἢ ἔσται ἢ τι τοιοῦτο προστεθῇ, οὔπω λόγος ἀπο-

φαντικός. | διότι δὲ ἕν τί ἐστιν ἀλλ᾿ οὐ πολλὰ τὸ ζῷον πεζὸν

δίπουν | ― οὐ γὰρ δὴ τῷ σύνεγγυς εἰρῆσθαι εἷς ἔσται ―, ἔστι δὲ

ἄλλης || τοῦτο πραγματείας εἰπεῖν.                                                        15

그런데 모든 말은 술어를 통해서 서술적으로 있거나 또는 술어의

활용을 통해 그러함이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정의(말)도, 

"있다"나 "있었다"나 "있을 것이다" 또는 모종의 이러한 것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아직 서술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으로 인해 

"두-발 달린-동물"이 복수 것들이 아니라 모종의 단일한 것인데

(왜냐하면 잇달아 말해짐으로써 단일한 말으로 있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 이 점을 다른 주제에 대해 말할 수 있다.

Ἔστι δὲ εἷς λόγος ἀποφαντικὸς ἢ | ὁ ἓν δηλῶν ἢ ὁ συνδέσμῳ

εἷς, πολλοὶ δὲ οἱ πολλὰ καὶ | μὴ ἓν ἢ οἱ ἀσύνδετοι.

단일한 것을 표현하는 말이든 결속에 의한 단일 말이든 단일

서술 말인 반면, 단일한 것이 아닌 복수의 것들을 표현하는

말들 또는 결속되지 않은 말들은 복수의 말들이다.

(Τὸ μὲν οὖν ὄνομα καὶ τὸ ῥῆμα φάσις | ἔστω μόνον, ἐπεὶ οὐκ

ἔστιν εἰπεῖν οὕτω δηλοῦντά τι τῇ φωνῇ | ὥστε ἀποφαίνεσθαι, ἢ

ἐρωτῶντός τινος, ἢ μή, ἀλλ᾿ αὐτὸν || προαιρούμενον.)                                   20

(그러므로 명사 그리고 술어는 오직 언표로만 있는 것으로 하자.

왜냐하면, 누군가가 질문을 하는 경우든, 혹은 그렇지 않고, 스스로

의도하여 말하는 경우든, 그런 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모종의 것이

서술되도록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19. (a) οὕτω와 ὥστε를 분리시켜 번역하였다. 이 둘을 연결하면,

  (b) "...모종의 것이 음성언어에 의해 서술되도록 하는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a)는 "그런 식"이 명사만, 혹은 술어만을 말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b)는 "명사"와 "술어"라는 말이 생략된 것으로 번역하게 된다.

** Loeb 편집에 따라 20 ἢ μή 앞에 쉼표 추가.

*** Ackrill의 제안에 따라 이 문단을 괄호 안으로. 17a21의 "Τούτων"이

명사와 술어, 언표를 지시하면 언표가 다시 말로 취급되는 모순된

번역이 발생한다. 해당 문단을 괄호처리하여 문제의 단어가 "단일 말"과

"복수의 말들"을 지시하도록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Τούτων δὲ ἡ μὲν ἁπλῆ ἐστιν ἀπόφανσις, οἷον | τὶ κατὰ τινὸς ἢ

τὶ ἀπὸ τινός, ἡ δὲ ἐκ τούτων συγκειμένη, | οἷον λόγος τις ἤδη

σύνθετος. ἔστι δὲ ἡ μὲν ἁπλῆ ἀπόφανσις | φωνὴ σημαντικὴ περὶ

τοῦ εἰ ὑπάρχει τι ἢ μὴ ὑπάρχει, ὡς | οἱ χρόνοι διῄρηνται. ||

이러한 말들 중 한편은 단순 서술로, 이를 테면 무엇에 따라(긍정) 

무엇을 서술하거나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부정) 무엇을 서술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은 이것들로부터 조합된 서술로, 이를 테면 모종의 이미

복합된 말인 것이다. 그런데 단순 서술은 모종의 것이 존속하는지

혹은 존속하지 않는지 여부에 관한 지시적 음성언어


6. Κατάφασις δέ ἐστιν ἀπόφανσις τινὸς κατὰ τινός, ἀπό|φασις δέ                     25

ἐστιν ἀπόφανσις τινὸς ἀπὸ τινός. ἐπεὶ δὲ ἔστι καὶ | τὸ ὑπάρχον

ἀποφαίνεσθαι ὡς μὴ ὑπάρχον καὶ τὸ μὴ | ὑπάρχον ὡς ὑπάρχον

καὶ τὸ ὑπάρχον ὡς ὑπάρχον καὶ | τὸ μὴ ὑπάρχον ὡς μὴ ὑπάρχον,

καὶ περὶ τοὺς ἐκτὸς δὲ || τοῦ νῦν χρόνους ὡσαύτως, ἅπαν ἂν                         30

ἐνδέχοιτο καὶ ὃ κατέφησέ | τις ἀποφῆσαι καὶ ὃ ἀπέφησέ τις

καταφῆσαι. ὥστε δῆλον | ὅτι πάσῃ καταφάσει ἐστὶν ἀπόφασις

ἀντικειμένη καὶ πάσῃ | ἀποφάσει κατάφασις. καὶ ἔστω ἀντίφασις

τοῦτο, κατάφα|σις καὶ ἀπόφασις αἱ ἀντικείμεναι. λέγω δὲ

ἀντικεῖσθαι || τὴν τοῦ αὐτοῦ κατὰ τοῦ αὐτοῦ, μὴ ὁμωνύμως δέ, καὶ                 35

ὅσα | ἄλλα τῶν τοιούτων προσδιοριζόμεθα πρὸς τὰς σοφιστικὰς |

ἐνοχλήσεις. |

긍정은 무엇에 따른 무엇에의 서술이고, 부정은 무엇으로부터 벗어난

무엇에의 서술이다. 그런데 존속하는 것이 존속하지 않는다고도 또

존속하지 않는 것이 존속한다고도 그리고 존속하는 것이 존속한다고도

존속하지 않는 것이 존속하지 않는다고도 서술될 수 있기에, 그리고

현재 시간 이외의 시간들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기에, 누군가가 

긍정했던 바를 부정하게 되는 일도 또 누군가가 부정했던 바를 긍정하게

되는 일도 전적으로 허용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긍정에 부정이 대립되는 

것으로 있고 또 모든 부정에 긍정이 그러하다는 점이 분명하다. 이를 

대립이라 하기로 하고, 대립항들을 긍정과 부정이라 하기로 하자. 나는

대립된다는 말로 같은 것에 따른 같은 것의 대립을 의미하며, 동음이의적이지

않은 방식을 뜻하고, 짜증을 자아내는 소피스트스러운 것들에 대항하여

우리가 앞서 규정한 바 있는 이러한 종류의 여타의 것들 또한 말하고 있다.


- 말의 단일성과 단순성의 두 기준에 대하여. 여러 표현이 정의로서 본질적으로 단일 대상을 지시하게 되는 경우와 우연한 속성들을 결합시켜 하나를 지시하는 듯하지만 실상 여러 대상들이 지시되는 경우의 구분인지?


- "not"과 "분리"에 대한 이해. 주어와 술어를 분리시키는 것이 "not"의 기능인가? 이것은 It is not the case that~ 의 의미인가? 1~3장에서 비규정명사, 비규정동사와의 구분은? 플라톤은 <소피스트>에서 not을 다름으로, 분리는 (프레데에 따른다면)

not과 being의 결합이 수행하는 분리를 통하여.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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