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상담이 어떻다느니 치유의 인문학이 저떻다느니 개소리들이 판을 치는 와중에 또 그 약팔이 사기꾼 개소리에 넘어가 스스로 하고 있는 공부가 뭔지도 고민하지 않고 그냥 '나는 인문학도요' 이 지랄을 떨면서 세상의 답이 다 책 속에 있고 그럴싸한 경구와 어림짐작으로 어설프게 엮어낸 신념만 있으면 자신이 정의의 사도라도 될 수 있는 듯이 구는 새끼들이 저 장사치새끼들을 부추겨댄다.

  역사를 통해 문학을 통해 그리고 철학을 통해서 무엇을 위해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다고, 그 실마리를 찾았다고 떠들어대는 씨발것들로 인해서 정작 학문은 본연의 가치를 잃고 퇴색되어 간다. 소위 '문, 사, 철'을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묶는 것 자체가 가당키나 한지도 의심스러우나 어쨌든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학문 자체는 고유한 연구사와 연구방법론 그리고 그 성과들에 대한 교육을 중심으로 전문화되어 있고 그 목표는 단적으로 말해 '앎'이다. 그것은 잘 살기 위해서도, 행복하기 위해서도, 다른 그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도 될 수 없는 가장 직접적인 목표이다. 묻고 따지고 검토하는 것, 그 외의 일들은 학문 자체에 의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수행하는 개개인 혹은 그 학문에 가치를 부여하고 투자를 감행하며 결과를 요구하는 사회가 떠맡아야 할 일들이다. 또한 현실에서 학문의 쓰임이란 학문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학문의 현실성, 사실에 근거한 정당성을 검토받기 위한 시험의 과정이다.

  학문을 통해 얻어 현실로 가져가야 할 것은 답이 아니라 물음이다. 구체적이며 복잡다단한 현실을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방식으로 제단하여 편협하고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생각을 피하는 게으름과 자신의 무지를 변명하기 위해 '유명한 누구씨가 어느 책에서 그랬어'라고 떠들어대는 것, 그것은 학문과 전혀 무관할 뿐더러 학문에 똥오줌을 갈겨대는 짓이다. 학문이 현실로 나올 때 그 학문은 현실에 대해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설득력을 검토받고 그 근거들을 시험받는다. 철학이 제기하는 문제와 그에 대해 철학이 제안하는 해법은 현실을 구성하는 다른 여러 요소들과 현실 속에서 조우해야 한다.

  통계와 역학과 진화론이, 전산과 회계와 행정이, 입법과 사법과 온갖 입장들 그리고 이론들 또한 여러 응용학문들과 공학들이 제작을 통한 실현이나 현상에 대한 강력한 설명력을 통해 현실에 개입해 왔고 이런 것들이 현실화되어 얽히고 설킨 것이 그야말로 현실이다. 이것들과 무관한 철학, 이것들과 절연된 문학, 이것들과 별개의 사학이 그 자체 독자적으로 지니는 가치는 그 외의 학문들이 현실과 별개로 지니는 가치와 같은 종류의 것들뿐이다. 앎, 그것뿐이다. 그렇지 않고 현실의 모든 접근들을 부정하려 들든,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을 통제하고 종합하려 하든, 아니면 건전하고 상식적인 방식으로 대화하고 수용하고 분석하고 비판도 하면서 상생을 도모하든, 현실에 개입하려 한다면 또 역시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그 소위 '인문학'이란 것도 정당성을 입증하고 여러 비판과 반박에 응대하여야 하며, 이러한 상호작용만을 위해서라도 다른 학문들에 대한 연구를 병행해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에 앞서 자신이 속한 학문 자체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되돌아 보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는 그 성과와 방법론이 외부로부터 수입되고 이식된 것인가, 아니면 자생적으로 일종의 학문풍토라 할 것을 갖추어 온 것인가 따져 물어야 한다. 그러한 틀 속에서 기초라 이야기되는 것들, 전제되어야 할 것들에 대한 작업이 완수되어 있는지 또한 반성해야 한다. 용어의 통일은 이루어졌는가? 합의된 정론과 이를 중심으로 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정리, 축적되고 있는가? 이러한 작업을 지속시키기 위한 경제적 여건은 마련되어 있는가? 이를 가능케 할 연구자들의 수는 충분한가? 자료의 수집과 정리의 방식이 정립되어 있나? 현실에 개입을 하네 현실을 규제하네마네 다른 학문들이 이러네 저러네 오지랖 떨고 분수를 모르고 개지랄 쌩쇼를 해대기 전에 당연히 자문하며 거쳐야 할 고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들이 저 위에서 말한 과대망상 정신병에 걸린 상태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주의 의지나 역사의 참뜻 혹은 감수성이 메마른 자들은 모르는 촉촉하고 따스한 통찰 뭐 그런 것을 지들만이 안다고(사실 그딴 걸 알 필요 자체가 없으므로 남들이 모른다는 건 맞는 얘기일 수도 있다) 떠들어대는 치들에게는 자신이 연구하는 그 학문이 실상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한계지어져 있고 아주 구체적으로 물리적인 배경에서 그러한 조건들을 필요로 하는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실감 자체가 없다.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심지어 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들은 이미 어느 정도 마쳐 놓고서 당연시하는 고리타분하고 시시껄렁한, 연구라고 하기도 뭣한 단순반복작업마저도 반드시 필요하고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르는 새끼들이 그 학문의 정수인냥 떠들어대는 직관이니 통찰이니 하는 것, 사실 그런 것은 학문이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학문이 추구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말했듯이, 현실에 개입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을 충족시키기에 앞서 개별 학문이 학문으로서 유지되고 존속되고 가능하다면 발전까지 도모하기 위해서 그냥 구석에 쳐박혀서 입 닥치고 좆나 파야할 것들만도 산더미처럼 많다. 그럼 이러한 일들을 하는 것이 학제를 통해 연구자로 양성되는 과정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연습하고 또 이후 스스로 이어 나아가야할 인문학의 정체 아닌가. 이것이 어떻게 창의적이고 기발한 발상에 기여하고 전체를 종합적으로 보는 통찰력에 기여하며 심지어 그것이 사회 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 그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종다양한 영역들의 차이들을 싹 다 무시한 채로 일관되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나? 미친 거 아니냐.

  혹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대화를 나누는 뭐 그런 일들이 조금이라도 사고를 유연하게 하고 뭐 그러는 데에 도움을 준다손 치더라도, 그건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란 것에 고유한 것도 뭣도 아니다. 모든 학문이 요구하는 일이다. 공학이 되었든 문예창작이 되었든 어디서라도 그런 걸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심지어 대학이란 곳과도 상관이 없다.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알만한 사람을 찾아 묻고 그렇게 도움을 받아 책을 추천 받고 글을 교정 받고, 그런 게 왜 대학, 그것도 인문대학에만 고유한 기능인가? 이러한 기본교양은 '인문학'이 아니다. 혹시 그런 걸 '인문학'이라고 하고 있던 것이라면 그게 전공부심의 이유가 되는 건 전혀 아니란 것도 받아들이길 바라고.

  내 전공분야만 하더라도 고전어-우리말 사전편찬도 시도조차 못하고 있고(종교계에서 나오는 헬라어 사전 말하는 거 아니다, 라틴어가 불가타랑 고전기 라틴어 다르듯이 희랍어도 그렇게 나뉘는데 뭐 더 말해서 뭐하겠나), 그야말로 '고전'이라 불리는 주요 저술들의 번역도 갈 길이 멀고, 우리나라에서 만들고 검토해서 수용된 독자적인 편집본도 물론 없고 그걸 할 연구자들을 양성할 교육과정조차 부족하고, 이런 거 말고도 숱한 기초작업들 다 거치고 나서야 외국 학술연구서들 번역해서 도서관 꽂고 강의교재로 쓰고 할 수 있을 테니 그런 번역도 한참이나 먼 미래의 일일 테고, 이게 한국에서 서양고대철학에 국한해서 한 얘기이니 시대별, 주제별, 인물별로 나눠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는 작업들이 널려 있다.

  그나마 이런 것들은 다른 나라에서 해놓은 게 있으니 2500년을 싹 다 반복할 필요는 없어 그나마 다행인데, 가끔 '지금 여기에서 살아있는 우리만의 철학' 어쩌고 하는 개새끼들은 철학 처음부터 다시 하잔 얘기를 하는 듯하지만 그런 병신들은 알아서 걸러질 테고, 철학사에 관련된 이러한 작업들 말고 작금의 현실에 관련하는 철학적 논쟁들과 관련해서는 다시 앞서 이야기했던 여타 학문들에 대한 기본적인 소통능력의 부재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고, 역시나 그에 앞서 이쪽의 패가 뭐가 있어야 저쪽과 게임을 하든 말든 하는 것이지 철학 고유의 아무것도 없다 하고 들어가려면 다른 학문들이 굳이 철학을 끼고 놀아줄 이유가 없고.

  이런 마당에 씨발 인문대 나오면 취업이 안 되는데 취업 시켜줘요, 잡스가 인문학이 좋댔어요, 우린 공돌이들과 달라서 생각이 깊고 시야가 넓고 막 착해요, 이딴 씹창난 구역질이나 해대는 새끼들을 봐야 한다는 게 좀 난감하고 짜증이 치미는 것이지. 솔직히 어떤 매체에 올라간 어떤 잡소리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건데, 듣자하니 그거 쓴 사람이 인문계 전공자가 아니라던가 뭐라던가 하기도 하더라. 유학파래나? 그냥 고도의 인문안티이길 바랄 따름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성을 극복하고 주체를 탈피하자는 얘기를 앞뒤 싹 다 잘라 버리고 '우리에게 무식할 자유를 허하라'로 받아들인 몇몇 인문팔이 씨발놈들 때문에도 심적으로 많이 힘든데, 인문학이라 묶을 만한 게 만일 있고 또 그게 인문정신이라 할 만한 무언가를 갖추었다면, 그건 skeptomai, 묻고 따져 의심하면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앎을 향해 나아가는 정직한 양심과 성실함, 그러한 지적인 태도일 것이다. 뭐 인문학, 인문정신이라기 보다는 초창기 학문의 본래적 모습이란 게 저런 거 아니겠나. 그걸 내다 버리고 다른 모든 학문들이 저 태도를 유지하는 와중에 지 혼자 미친년 장마에 널뛰듯 하는 평론뭐시깽이 몇몇에 더해, 상담과 치유를 논하는 사기꾼들을 포함하여, '난 인문학 전공자라 좆나 톡톡 튀어요'류의 찌질이들까지 합세하니 내 마음이 심히 아프다. 이 따위 태도들로 중론이 모이고 그게 힘을 얻어 이를 바탕으로 지원책이 마련된다면 아마 학문을 더 빨리 더 확실하게 망쳐 버리는 일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순수학문은 그냥 다 무턱대고 버리는 돈 갖다 넘기는 식으로 지원하는 거다. 그 우연하고 기가 막힌 어마무지한 성과들이야 역사를 통해 봐왔을 테고, 그게 투자와 결과의 인과관계 같은 건 아니라서 미안하지만 쌩돈 날릴 수도 있는 거다. 애초에 순수학문이란 게, 누차 말하지만, 뭘 하려는 게 아니라 뭘 알려고 하는 거라서 말이지. 뭐 어쩌겠나,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냥 닥치고 잡일이나 하다 뒈지면 그만일 터인데.

-蟲-

P.S. 좀 찾아보니 이 글에 대한 주된 반론들은 대강 '인문학의 목적이 앎이라니 너무 단순한 주장이다'인 듯. 뭐 행동을 촉구하는 주장이 들어있는 논증도 연구의 결과로 나올 수 있겠고, 연구 자체가 기존 지식권력의 헛점을 폭로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겠고, 이래저래 여러가지 가능한 반론들이 짐작되긴 하는데 여기에 직접 말 걸어 주실 만큼 한가하시고 인류애 넘치시는 다정다감하신 분들이 계시길 기대하는 건 내가 너무 염치가 없으니 그저 짐작만 할 따름.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현실참여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요소들이 사실의 검토와 논증의 구성, 제시된 논증들의 분석과 재구성과 평가라는 이를 테면 '학술연구'에 대해 앎보다 더 앞서거나 더욱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리란 생각은 하기 어려운데, 이걸 좀 구체적으로 반박해 주시는 분이 계시길 바라기도 또 역시나 염치가 없고, 내가 궁금하면 내가 책 찾아 보는 게 맞는 일이겠지. 그러라고 빌어먹고 사는 나는야 인문학도이니까.=_= 근데 난 밑딱까리 시다바리 빌어먹는 지지리 궁상 거지새끼 같은 학자를 꿈꾸기 때문에 그냥 좆나 비생산적이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고리타분한 사료정리와 개뻘소리가 아닌 한에서의 소박하고 사소한 해석 제안 정도나 하다 뒈지면 그만인지라, 아, 모르겠다. 뭐 직접 말 건 사람도 없건만 나는 왜 또 뻘소리를 늘어 놓는가. 아, 근데 학문이 시장가치 없다는 내 또 다른 주장은 동의를 좀 얻고 있는 건가? 하기사 이것도 인문학의 적극적 현실참여가 가능하다고 보면 막무가내로 '그게 팔릴 이유가 없다'고 하기도 어렵겠네. 깨시민들에게 내다 팝시다, 인문학. 인문학 좀 사줘요. 기왕이면 서양고대철학 좀 사줘요. http://www.jungam.or.kr/donate ← 정암학당 후원 안내, 피싱사기 아니니 그냥 둘러나 보세요=_=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헬레니즘 사상가들의 저술들과 단편들의 우리말 번역을 만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학당연구실 임대료만도 후덜덜해요. 돈이 없다면 부동산 정책에 개입합시다. ...음, 이것이 학문의 현실적인 힘? 아, 자꾸 뭔가 말을 보태게 된다. 역시 죄 지은 자에게 변명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앎을 추구하는 과정과 결과로 나온 앎은 구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고, 나는 전자의 활동 그 자체가 학문의 본질이라고 하는 중인데 결과로서의 앎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 내 입장에 대한 적절한 반론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고, 뭔가 알아낸 다음에 그게 이성의 간계에 뭔가 스토아학파마냥 부합하는 식으로 사는 쪽으로 쓰이든 유물론적 역사의 진행에 발맞추어 자본의 개들에게 철퇴를 내리자는 주장의 근거로 쓰이든, 도덕과 이념의 계보를 들추어내든 뭐 어쩌든 저쩌든 그거 다 그야말로 '알고 난 다음' 이야기 아닌가 싶다. 아, 혼자 떠드니 외롭다. 그래도 또 한 마디, 결국 내가 하려던 말은 '인생의 답은 책에 없어요'인 듯. 실존주의는 신앙이거나 문예지 학문은 아니라고 봐요.(실존주의 추종자님들 미안, 여러분도 플라톤을 욕해요, 뭐 플라톤 욕은 나도 하지만) 아, 이거 자꾸 덧붙이다 보니 재미 붙네. 생각해 보니 내가 막무가내로 '학문은 그냥 앎이야, 닥치고 알자' 뭐 이런 거 아니었는듸=_=? 현실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개별학문이 현실의 여러 조건들은 물론이고 여타 학문들의 상반된 입장들에 의해서도 제한받고 시험받아야 한다는 얘기였고, 그거 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순수하게 학술적인 불가피한 작업들이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네네, 인문학으로 인생의 답을 찾으세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우주가 응답해 줄 거에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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