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군가가 플라톤을 관념론자로 규정하고서 그의 철학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이데아와 현실 사이의 이분법을 비판한다.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현실과 사유 사이의 간극을 지적하며 플라톤의 관념론과 이분법을 옹호한다. 그 싸움을 지켜보거나 전해들은 사람들은 플라톤이 관념론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플라톤은 관념론자가 아니다. 관념론자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정당화하며 연구해온 사람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근거들, 해석의 전통들을 이어받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밑에서 배우고 익히며 이후의 연구를 수행할 준비를 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잊혀져 버린다. 적도 아군도 구경꾼들도 없다.

2. 한국에서 누군가 들뢰즈니 라깡이니 뭐니 하며 이전의 철학은 모두 틀렸다느니 새로운 철학의 탄생이라느니, 정신분석이라느니 주체의 해체라느니 차이의 승리라느니 단말마를 토해낸다. 한쪽에서는 프랑스 철학이 뭔 소리를 하는지 알아먹지도 못하겠다고 욕을 한다. 다른 쪽에서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에 갇혀 고정관념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못 알아듣는 너희들은 우민이라고 마주대고 욕을 한다. 그러는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플라톤전집이 재편집되어 출간되고 헬레니즘과 중세, 중동과 근동의 고중세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띄고 철학사의 맥락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로 그 들뢰즈와 베르그송과 이러저러한 사람들에 대한 해석과 연구가 진행된다. 고대 아테네로부터, 르네상스 시기의 프랑스로부터, 근대 독일과 영국으로부터, 현대 미국으로부터 단절 없는 매개를 발견하거나 파악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입체적으로 살아있는 현대 프랑스 철학이란 것이 현재진행형으로 논의된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 역시 근 한 세기 가까이 이루어지고 있다. Sokal's hoax를 처음 전해 들었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여전히 학계에서는 지젝에 대해 회의적이다. 자연과학과 수리과학 뿐만 아니라 언어학과 역사학이 언제나 날카로운 눈으로, 혹은 경멸섞인 태도로 논박의 준비를 마친 채 각자의 일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에서 삶의 구원과 문화의 향유와 인간의 정신건강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휘둘러지는 만능의 프랑스 철학과 그 정체불명의 허황한 망상에 대한 사람들의 냉소와 야유, 그리고 좀 더 많은 구경꾼들 그 어느 사이에서도 프랑스 철학을 찾기 어렵다.

3. 이혼하는 자세로 결혼을 하란다. 냉장고를 없애 자본주의를 극복하잔다. 그리고 자신은 철학자라 한다. 그 놀랍고도 독창적인 통찰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제도 사회도 역사도 이해 못하며 아무 맥락도 없이 그저 피상적으로 기술에 적대적인 전형적인 인문학자, 혹은 철학자의 전형이라 비웃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역시나 말없이 논란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싸움판의 정반대편에서, 인문학의 기본은 문헌자료의 수집, 정리임을 역설하며 이를 위한 연구인력이 필요하고 또 다시 교육제도와 설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본들과 편집본 또 각 편집본의 편집방식에 대한 엄격한 기준에 맞추어진 연구를 통한 정당화, 이를 기초로 한 논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계 학계에서 국내의 퇴계 연구, 다산 연구, 원효 연구에 의구심을 품는 현실, 그러한 현실 내에서 전통의 중국철학이니 아니면 무슨 조선성리학이나 조선실학이니 뭐니 하는 소리들 뒤에 묵묵히 필요한 일을 준비하고 또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자연철학자들과 소피스테스들의 단편들에 대한 정리, 헬레니즘 시기의 수 많은 사상가들과 학파들의 전해지는 글들의 번역, 이를 위해 필요한 역사학, 문헌학, 언어학 등에 대한 탐구와 그러한 연구를 가능케 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요구하는 움직임들은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거리가 아니다. 관심받지 못하지만 그것이 적나라한, 그야말로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철학'의 현실이다. 유학파 국내 3, 4세대 교수들은 자신의 속한 대학원에서 박사를 배출하고자 바라지 않는 듯하다. 자신이 유학시절 향유하였던 연구환경과 자신의 제자가 처한 환경 사이의 비교를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떤 주제로 어떤 방법을 택해 연구를 하든 어지간하면 선행연구자가 있고 상호보완 가능한 관련분야 연구자들 또한 있으며 원로급과 현역과 동년배 연구자들을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러한 조건이 국내에 갖추어져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재능이 있고 꾸준한 노력까지 보여주는 학생이 그런 조건들을 누리지 못하고 또 학위를 받고 나서도 자신의 연구를 검증받거나 함께 발전시켜 나갈 여건이 되지 못하는 국내에 머무르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말은 제주로 사람을 서울로 보내라는 말을 엇비슷하게 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물학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던 박사후 연구과정생이 철학과 석사과정에 들어가거나, 수학분야의 중진연구자가 물리학 실험실에 연구원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고대 수리철학을 논한다거나, 국내에서 당장에 불가능하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은 여러 사례들을 생각해 보면 의문이 생긴다. 자신을 '철학자'라 부르는 저 치들에게 철학이란 그야말로 개똥철학 아닌가? 철학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플라톤은 『국가』의 상당부분을 할애한다. 철학이 전제의 정당화를 추구하고 앎들의 관계와 구조 및 위계 등을 통합적으로 총괄하여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활동이라면, 필경 플라톤이 당대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오늘날 철학이란 훨씬 더 실현되기 어려운 학문일 것이다. 개나소나 철학을 떠벌리고, 그 잡것들에 대해 욕을 하는 사람들은 철학이 글러먹었다느니 철학 따위 장식에 불과하다느니 화를 내고 실망을 한다. 누가 한국의 철학자를 보았나? 철학자가 있다면 당장에 학위과정 포기하고 그 밑에 들어가 제자로 받아주길 간청이라도 하겠다.

4.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이중의 고발자들이 있음을 토로한다. 대놓고 면전에서 고발을 한 멜레토스 등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소크라테스라고 부르며 고발하고 있다. 그 소크라테스는 강한 논변을 약하게 만들고 약한 논변을 강하게 만들며, 태양을 돌멩이라 말하고 전통의 신들을 부정하며, 땅 밑의 것들과 하늘 위의 것들을 바라보느라 돌뿌리에 걸려 저 혼자 넘어지고, 줄에 매달은 바구니 위에 올라서서 공중을 걷는다고 미친 소리를 지껄인다. 그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 대체 그는 누구인가? 고발이 이루어지고 아테네인들이 소란을 피우며 야유하고 편드는 그 가운데에서, 정말로 그 자리에 소크라테스가 있는가?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그림자에 맞서 권투를 해야 하는 처지라고 한탄한다. 그러나 정작 저 장면에서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소크라테스 자신이 아니라 그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표결을 받고 형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림자가 아닌 실제의 소크라테스이다. 나는 지금 아테네에 살고 있나? 그러나 다행히도, 소크라테스는 없다. 다만 그를 낳을 자궁이 찢어 발겨지는 듯한 환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5. 보거나 듣거나 읽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서 멈추어 바로 그 지점을 묻고 고민해야 한다. 사실로부터 논거들을 마련하고 논리에 입각하여 논증의 구조를 세움으로써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바를 참일 것으로서 주장해야 한다. 후자의 기준으로 전자의 일을 행하고 전자의 일로부터 후자의 기준을 체득해야 한다. 논증을 분석하고 재구성해 보면서 문헌으로부터 또 역사적 맥락과 오늘날까지의 발전된 학문에 도움을 받아 가능한 한 정당성이 강화되는 방식으로 빈 부분을 채우고 어긋나는 부분들을 조율하는 것, 매순간 자신의 한계를 거짓 없이 드러내고 또 거기에 직면함으로써 나아갈 길을 받아들이고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 자신 혹은 자신이 믿는 어떤 주장의 한계를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길을 언제나 열어두는 것, '철학' 운운하기 이전에 가장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학문하는 태도라 믿는다. 꼭 논증이 아니더라도 좋다. 사회 현상이어도 좋고 관찰이나 계산의 과정이나 결과여도 좋고 한갓된 경험이어도 괜찮다. 비약 없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이해하려 노력하면 된다. 그게 싫으면 학문을 관두어야 한다. 철학이 아니라 건전하고 정상적인 사고를 위한 이러한 조건들을 밝히고 세우는 데에만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큰 노력과 희생이 필요했다. 그게 학문의 역사다. 이 일을 하려고 만사를 제치고 제 삶을 바친 자들, 그러다 권력자의 눈밖에 나거나 대중의 뜻에 어긋나거나 전통과 대립하다 죽임을 당하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된 사람들, 그들을 지지하고 그 뜻을 이으며 드러나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노력을 하며 또 일생을 바쳐 '연구'하다 이름없이 사라진 그 모든 사람들, 그들 덕택에 이제 비로소 학문을 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 학문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그런 문제들이 점차로 명료해진 것이라 믿는다. 이 모든 성과를 개무시한 채 뜬금없이 자신이 철학자라며 온갖 비약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오류를 직관과 통찰로 포장해 수치도 모르고서 똥오줌을 갈기고 다니는 치들로 인해, 아직 출발도 못한 채 겨우 갈피나 잡아가나 싶은 한국의 학문이 다시 가망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리는 듯하다. 한국에는 철학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거기서 한참이나 먼 어느 구석 그늘진 곳에서 철학을 준비하는 학문이, 연구와 교육이 저 그림자에 덧씌워진 심판을 피할 길 없이 기다리고 있다. 당신들이 그렇게나 엿먹이고 있는 바로 그 철학이 너무나 하고 싶어서 간절하기만 하였던 동갑내기 친구 하나는 서른도 못 되어 죽어 버렸다. 독일에서 최고논문상을 받고 학위 받아 돌아와 돈도 없고 강의기회도 부족한 와중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 열 시간 가까이 묵묵히 번역을 하고 번역을 위해 연구를 하고 그 연구를 검토받고 토론해 보기 위해 발표회장들과 온갖 학회들을 찾아 다니던 스승님 한 분께서는 가족분들을 남긴 채 나이 쉰에 돌아가셨다. 그 후에도 강의와 행정업무에 치이면서도 연구가 하고 싶어 이 악물고 버티며 없는 시간 쥐어 짜 머리 싸매가며 공부하던 사람들이 매년 죽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철학답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문이란 이름조차 아까운 허황한 망상을 자랑스레 지껄여대며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는 어릿광대들을 마주칠 때면, 그야말로 살의를 느낀다. 그런들 무엇하겠나, 내 앞가림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나같은 쓰레기는 분노할 자격조차 없다. 배울거리를 팔러 이리저리 떠돌며 젊은이들을 현혹시키고 말싸움을 일으켜 이기려 들고 사람들의 무지를 조롱하는 소피스테스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소피스테스』 붙들고 논문이나 쓸밖에. 그래도 한 마디 하자면, 적어도 저 따위 것은 철학이 아니다.

-蟲-

P.S. 어찌된 일인지 이 시시껄렁한 넋두리를 페이스북 링크 타고 보러 오시는 분들이 계신 듯합니다. 저는 찌질하고 궁상맞은 데다가 능력도 없고 게을러 터져서는 피해망상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세상 욕이나 하며 방구석에 쳐박혀서 징징거리는 걸 인생의 낙으로 삼는 답이 없는 쓰레기 찌끄래기 버러지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저를 조리돌림하고 계신 걸까 하는 두려움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잠잠하던 장염과 위염과 식도염까지 도지는 듯하며 돈도 없는 주제에 술을 마시고 싶다는 충동을 주체할 수 없게 되어 버려서 큰 일입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여러분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이겠습니다만. 제가 불쌍하고 안타깝고 목불인견의 참상 속 구제불능의 폐인처럼 여겨지신다면 긍휼히 여기시어 하해와 같은 마음 베푸시는 김에 술이나 쏘시면 고맙게 마시겠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지금 더위를 먹었나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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