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한 글은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씨의 페이스북 글 전문. 

"강남역 살인 사건. 범죄자에게 정신병이 있으니 여성 혐오 사건이 아니라고 말하는 주장에 대해서...

 정신병에도 맥락이 있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 시절에는 많은 조현병 환자들이 환청을 호소하면서 중앙정보부가 나를 미행하고 도청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무렵 어떤 환자가 TV 뉴스 생방송 중 뛰어들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말을 외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는 사회적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면서 CIA가 환청의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도 생겼고 2000년대 이후 삼성의 지배력이 커지면서는 삼성이 소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학생운동을 한다고 정신질환에 걸리는 것은 아니고, 정신질환에 걸릴 사람이 학생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정신병이 생기면 그 증상에 정치적 내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망상이란 자기의 사고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고 내부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정신병(이 경우 정신병은 현실에 대한 검증력이 떨어져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질병 상태, 대표적으로는 급성기의 조현병, 조울정신병을 의미한다)을 가진 사람이 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드러낸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문제의 리트머스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정말 그런지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신병의 증상은 사회적 맥락 속에 있다는 것이다.

 어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여성이 번화가의 화장실에서 한 남성에 의해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났고’ 그래서 죽였다는 말을 했다. 그 남자는 오랜 조현병의 치료력을 갖고 있고 현재는 치료를 중단한 상태다. 그가 지금 정신병적 급성 상태에 있는지는 나로서는 정보가 없어서 모르겠다.

 그가 현실적인 판단력을 잃고 심각한 공격적인 행동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 행위가 모두 정신병 때문인 것은 아니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의 범죄율이 정신병이 없는 사람에 비해 낮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다양한 이유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여기에 일부 정신병적 증상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것으로 범죄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 정신병적 증상을 갖고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신병을 가진 한 사람이지, 정신병 그 자체가 아니다. 한 사람으로서 그들은 다양한 기질과 성격, 성장배경, 문화, 생활 조건이 다르며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도 다양하다.

 문제는 그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것은 ‘여성혐오’다. 이것이 그의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망상은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이, 남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에 비해서 특별히 남자들에게 더 기분나쁜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병을 갖고 있으며, 범죄를 저지른 그는 아마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외감과 분노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외감의 원인을 여성들의 자신에 대한 태도에서 찾고, 분노의 초점을 여성들에게 맞춘 것은 분명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우리 사회 내에서 최근 들어 뚜렷하게 늘어난 심리적 현상인 여성 혐오가 (만약 그에게 정신병적 망상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의 망상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여성 혐오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망상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망상을 가졌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병적 증상은 맥락이 있다.

 결국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할 근거일 수 없다. 오히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의 이유로 ‘여자들의 무시’ 운운하는 상황이 여성 혐오 이슈를 우리가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이 사건은 분명한 여성 혐오 범죄다.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닌 것이 아니라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여성혐오 범죄인 것이다.

 한 가지 더. 또 상상해 보자. 만약 우리 사회가 여성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누군가 이런 살인을 저지르고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지금과 같은 사회적 파장이 일어났을까? 수많은 여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그런 분들이 있더라도 그저 해프닝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이 큰 이슈가 된 이유는 한 범죄자의 말 때문이 아니다. 그 범죄가 일어난 우리 사회의 위험한 현실 때문이다. 강력 사건의 희생자 비율이 남성에 비해 여성이 8배가 넘는 통계로 알 수 있듯 여성들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여성 차별에 더해서 최근 잘못된 여성 혐오 의식으로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다. 여성 혐오 의식의 확산으로 범죄의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정당하다고 여기니 범죄의 잔인성은 증가하며 모방 범죄도 늘어난다.

 이 문제로 불필요한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노력이다. 여성 혐오 의식이 정신병의 증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면 그 심각성을 인정하고, 사회 전반에서 이런 의식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구조적 개혁을 하고 의식의 변화를 추구해야지 지금 뭐를 하고 있나 싶다. ‘정신병이 범죄의 원인이냐? 아니면 여혐이 원인이냐?’ 이런 수준 낮은 논쟁은 이젠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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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이 『국가』 에서 그랬지. 말을 골라도 잘 달리는지 못 달리는지를 따지지 암수를 따지는 게 아니고, 사냥개를 골라도 암컷이든 수컷이든 사냥을 잘 하는 개를 고른다고, 사람도 성별이 아닌 능력과 적성에 따라 그에 합당한 교육을 받고 걸맞는 직책과 의무와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편견이란 거대한 파도를 넘어서서 이런 전제를 받아들여야 바람직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따고 말이야. 2천 년도 더 전에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게다가 이것도 남녀평등, 성평등이라 말하긴 부족하고 이 아자씨 여혐종자다. 적어도 오늘날 이 사회에서라면 저건 당연하고, 그냥 단순히 차이를 사상시켜 버리는 게 아니라 나아가 여러 다른 부분들을 그게 신체에 관련되든 사회에 관련되든 문화든 편견이든 여러 관점에서 그런 차이들을 조율하고 개선할 것, 보완할 것,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까지 왔어야 하는 거 아니냔 거다. 뭐 이렇게 말해봤자, 나같은 머가리 빻은 시헤한남십치가 단 한 번도 보장받지 않은 적 없는 공짜 권력과 온갖 특혜, 이걸 적극적으로 누리면 누릴 수록 남성집단에서 강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권위까지 심어주는 한국 남성의 편리를 다 내다 버릴 수 있을 리는 없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나는 여전히 밤거리를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고, 술이 떡이 되어 길바닥에 나자빠질 수 있고, 여관방, 화장실, 공중목욕탕 어디를 가든 훔쳐보는 시선이나 숨겨진 카메라 따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사람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칼을 챙겨온 어떤 새끼가 숨어 있는 자리에 가더라도 나와 다른 남성들이 아니라 어떤 임의의 여성이 죽임을 당할 것이기에 그걸 두려워할 이유조차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여성 혐오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망상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망상을 가졌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병적 증상은 맥락이 있다." 바로 그 맥락 안에서 동료 시민의 반수 가까이가 살해 당하고 폭력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고 그런 여성혐오범죄를 목격하고 전해 들으며 점점 더 큰 공포를 느끼며, 피해를 당했다는 바로 그 이유로 비난을 당하고 폭력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위협을 받고 공포에 비명을 지른다는 이유로 갈등을 조장한다며 책임을 묻는 자들에게 둘러 싸이게 된다. 아주 오랜 시간 그래왔고 지금 그러하며 앞으로도 바뀌기 어려운 부조리인데, 이 부조리가 남성이 남성으로서 지니는 아무 근거없는 무자격의 특권 그 자체이다. 이 특권을 버리긴커녕, 이것이 다른 이들의 당연하고도 불가침한 권리를 박탈하였기에 자신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억울한 자신을 매도한다며 여성을 적으로 삼으려 들고 또 누군가는 연약한 여성을 지켜야 한다며 여성을 소유하려 들며, 또 누군가는 이 모든 문제의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여성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며 가르침을 전하려 안달을 한다. 뭐 이 모든 종류의 반응들을 싸잡아 욕할 단계에라도 왔는지도 의문스럽고, 나 자신이 페미니스트나 여성주의자를 자처한다면 정말 날 아는 모든 이가 비웃을 일이기도 하겠기에, 그래서 잘 모르겠다. 내 민증 뒷번호 앞자리가 바뀌지 않고, 내 겉모습이 바뀌지 않고, 내가 소속집단에서 지금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전면에 나서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주장하지 않는 한, 또 다른 선택지가 있기는 한지. 시헤한남십치인 나는 내가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건강한 신체도 매력적인 외모도 갖추고 있지 못하고 뛰어난 언변이나 포용력 넘치는 성격 역시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것들을 지니려 노력 또한 않고 있어서 연애시장에 진입조차 못한다는 것을, 그게 나 아닌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잠자코 인정하고 조용히 혼자 살다 뒈지는 정도의 선택 이외에는 달리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다. 아, 물론, 모든 조건을 애써 다 갖추더라도 상대(그게 누구든)가 날 선택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상대의 권한이고 자유일 따름이다. 음, 애초에 이 부분을 받아들이면 사는 게 훨씬 편한 것이기도 하고. 내가 사는 내내 저질러 왔던 온갖 언행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나를 위선자로 부르고 가식을 떤다며 조롱을 하리라 예상하지만, 말했듯이 똥이 마려워도 참고 화장실에 가는 것은 위선이나 가식이라기 보다는 그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지금 이 상황은, 누군가 대로변에 똥을 싼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 아닌가, 그것도 남성집단 내에서는 아무런 행동도 못했을 비겁자가 한 여성을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칼로 난도질 해 살해한, 누가 봐도 끔찍한 여성혐오범죄 아닌가. 위선과 가식은 대환영이고, 거기까지 못 가더라도 최소한의 상식만이라도 지켜지길 바랄 따름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蟲- 

P.S. 구조 자체가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안에서 남성으로서 상대적 이익을 취하고 있으면서 자신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고 억울하다는 말만 되풀이해봤자,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가해자다. 그냥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다른 남성들의 자각하지 못한 여성혐오부터 적극적인 여성혐오까지 지적하고 비판하고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차단하는 정도의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여성을 대상으로 여성을 추앙하거나 여성을 지키거나 여성의 언행을 안전한(?) 방향으로 교정시키려 들거나 하지 말고 말이다. 이제까지 참았던 것이, 매우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어쨌든 표출되었으니, 여성들은 여성들 스스로 또 서로 지키고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 사회의 부조리인 여성혐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아마도 안전과 생존을 위해, 기존 질서에 편입되어 순응하고 이 질서를 옹호하는 여성들도 간혹 있을 것이나, 그들이 '생존을 위해' 그리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서로 싸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도 지껄이지 말고 남성은 잠자코 남성들끼리 치고 받는 게 여러모로 좋지 않겠나. '여성 전용 주차장'을 보고 외국여성이 의아해 한다는 식의 사례들을 생각해 보면, 사실 지금 한국 수준에서는 산술적 평균조차 여성에게 보장해 주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겠고, 다시 말하는데 그런 건 진작에 해결이 났어야 할 '수준 낮은 논쟁'이다. 음, 무슨 얘길 더 하고 싶었느냐 하면, 이 구조 내에서 남성이라는 건 그 사실만으로도 여성에 대해 이미 가해자라는 것, 그리고 직접적인 신체적, 정신적 폭력의 잠재적 가해자란 건, 특정할 수 없는 가해자가 남성집단 내에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특정할 수 없는 그 위험이 너무나도 큰 까닭에 여성이 남성 전체를 두려워하고 의심하더라도 그건 말하자면 정당방위라는 것, 그러니까 억울하면 색출해서 족쳐야 할 건 가해를 할 만한 새끼인 것이고, 남성집단이 그런 행동을 완벽히 억제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신뢰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리라는 것 정도이다. 설령 저 강남역 살인사건이 만에 하나 여성혐오로 인한 살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사건으로 일어난 여성들의 여론이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여성들의 일상적 공포를 증명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기도 하고. 강남역 추모 쪽지 중에 그런 게 있더라, '언니는 꿈이 뭐였어요?' 였던가. 이런저런 억압으로 좌절된 이 나라 시민 절반의 꿈이 지금 보다 더 많이 실현되는 게, 이 나라에 나쁜 일일 리는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요즘은 집단 내 개체수도 극소수고 짝짓기 철에 간택만 바라며 빛 한 번 보러 나왔다 금새 뒈지는 수개미들이 한남보다 더 우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정자 보관소 냉자고에 정자나 기증하고 다들 자살하자 ㅇㅇ. 아니, 이 유전자는 이미 글렀는지도.

P.S.2. 평소 여성을 혐오하는 마음을 품고 사는 자와, 별 다른 생각은 없으나 여자를 약자로 간주하는 사회통념을 바탕으로 남성을 거르고 여성을 죽인 자 사이의 구분이라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봤다. 좀 더 나아가서, 이번 살인범 개인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과정에서 살인과 그의 마음 속 여성혐오를 관련지어 단순 살인보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개인의 신념이 법에 의해 판단받을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야기도 보았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면 개인이 여성을 혐오하든 다른 어떤 소수집단을 혐오하든 나치를 추종하든 어떻든 그가 어떤 행동을 보이기 전까지는 그 '생각'만을 가지고 개인을 단죄할 수는 없는 게 오늘날 공유되는 인권으로서의 신념의 자유라는 가치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여성을 죽여야지' 라고 생각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자는 무작위로 사람을 죽이려다 여성을 죽인 경우보다 더 강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맞는 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여성혐오'라는 믿음을 잘못된, 악한 믿음으로 평가하면서 함의되는 일이 개인의 믿음에 대한 사회적 잣대를 통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여성혐오를 마음에 품어선 안 된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여러 사람들이 별 부담 없이 동의할 것이나, 특정 종교를 믿어서는 안 된다든가 어떤 사회, 경제, 문화의 한 특수한 지향을 마음 속에 품어서는 안 된다든가 하는 주장에 오늘날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성혐오가 옳다' 라는 믿음과 '민주주의가 옳다' 라는 믿음을 구분하는 건 전자가 나쁘고 후자가 좋다는 가치평가이다. 누가 무엇을 믿느냐는 문제에 대해 이러한 가치평가를 내려야, 그 다음 그 믿음과 특정 행위(이번 경우 '여성혐오'와 '여성살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질 수 있고, 다시 이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처벌의 경중이 갈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강남역 여성혐오 여성살해를 두고 이것이 여성혐오로 인해 벌어진 비극이라 말하는 것은 분명하고도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여성을 살해한 범인이 여성혐오로 인해 살인을 했다면, 이 살인이 다른 살인에 비해 가중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이건 어려운 일이라는 게 저 위에서 내가 봤다던 그 글이 하고자 하는 말인 듯하다. 

P.S.3. 여성을 살해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과 여성을 통제하에 관리하며 특정 남성의 영역 내에서 보호받도록 만드는 일, 이 두 일이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여전히 이 두 부류를 구분해서 대응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한편에 남는다. 이를 테면 생리대를 면세품으로 제정하는 일이나 생리휴가의 보장성 강화에 대해서는 저 두 부류 모두 반대할 수 있을 듯하나, 안심귀가서비스 등의 여성 안전을 위한 정책에 대해서 혹은 택시 운전자의 신원 확인 강화랄지 뭐 그런 종류의 일들에는 소위 '진성 마초'라느니 '기사도'라느니 '신사' 따위의 말을 하는 부류는 공감하고 지금 대동단결하는 일베와 오유는 반대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이건 그들 말마따나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니까). 여성전용주차장을 넓게 보면 여성혐오의 일환이나 좁게 보자면 여성혐오가 구조화된 사회에서 필요한 것, 이를 테면 사다리 같은 것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이려면 저 구분이 필요할 것이나, 그러한 단계적 해법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모두 묶어 전면적인 변화를 당장에 촉구해야 하는 것인지 남성인 나로서는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다. 어느 사이트에선가 여성을 대신해 무거운 짐을 들어주거나 하는 일을 이제부터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하던데, 주변 여성들 대부분이 조롱 섞인 환호를 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임시방편, 미봉책에 불과한 일들, 근본적으로는 여성혐오의 범주에 들어가는 여성의 대상화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이라 생각되는데, 구분이 어찌 되는지가 문제랄지. 다시, 남녀의 차이를 사상시키고 산술적 평등을 보장하는 것과 이 제거해 버린 차이를 다시 하나하나 고려하면서 형평성을 찾아 가는 것 사이의 구분이 문제라는 데에까지 갈 수도 있겠다. 플라톤을 통해서라면 아마 전자의 선까지 해석을 뽑아낼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후자는 고대 사상을 가지고서는 무리한 일이겠다. 거칠게 말하자면 앞의 것은 보편적 인권보장의 문제라면 뒤의 문제가 실제로 성평등이란 주제를 놓고 가치판단이 엇갈릴 수 있는 더 어려운 문제 아닐까 싶고, 여성혐오는 인권보장 차원에서도 부정할 수 있을 듯하고, 그럼 마초와 신사도 인권보장의 문제에서는 같이 갈 여지가 있겠으나, 그게 궁극의 목표가 아닌 바에야 구체적인 성평등의 문제에서 의견이 갈릴 사람들과의 오월동주라는 이야기 된다면, 다시 지금 여성들의 반응은 바로 그 임시방편도 여성혐오라는 얘기로 넘어가겠고, 쓰다보니 결국 내가 여성혐오를 들쭉날쭉하게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뭐 이쪽이야 이론으로나 실천으로나 주도해온 것도 여성이고 결과를 축적해온 것도 또한 여성이니, 귀를 막고 있지만 않는다면 다양한 방향성과 여러 논증들을 듣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귀를 열어 둔다는 건, 결국 책이니 기사니 이런저런 것들을 찾아보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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